안경잡이
반쯤은 뚜렷하고
반쯤은 흐릿하다.
오늘 오후에 사온 시력은
오늘의 날씨에 맞는다.
지구의 한편에 버려진 TV 수상기들이 쌓이고
부서지고 불타오르는 지구의 또 다른 공장에서
깨끗한 화면이 만들어진다.
반쯤은 상냥하고
반쯤은 무서운 일.
우리는 자신의 눈코입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
우리가 꾸고 남은 꿈들을 판매하는 상점에는
폭풍 안에 닫힌 눈꺼풀들
빼앗긴 시력을 돌려받지 못하고
너는 울고 있다.
곧 내일의 날씨가 시작되고
비가 멈추지 않는 화면.




"반쯤은 뚜렷하고 반쯤은 흐릿하다"는 시인의 말이 강렬하다. 반쯤은 뚜렷하고 반쯤은 흐릿한 것이 어찌 안경 너머의 세계뿐이랴. 불확실성의 세계가 아닌가. 버려진 TV 수상기들이 쌓이고 있지만, 지구의 또 다른 공장에서는 깨끗한 화면의 TV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쯤은 상냥하고 반쯤은 무서운' 것이 바로 세계이다. 정작 자신의 눈코입을 나의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 우리들의 '빼앗긴 시력'은 돌려받지 못한다는 것.
반쯤은 웃고 반쯤은 울면서 살아가는 오늘의 날씨는 항상 비가 오고 있다.

/권경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