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가수 묘매리, 가난한 형편에 일하며 음악공부
우연히 작곡가 노윤태 소개받아 '사랑의 자물쇠' 발표
▲ 트로트 가수 묘매리씨가 관악FM '서영&석진의 가요톡톡'에 출연해 라디오 방송을 하고 있다.

"마흔 살을 넘기고서야 이룬 가수의 꿈. 1만 시간의 법칙을 믿고 악착같이 달려들었습니다."

지루한 수업 시간을 틈 타 반 친구들은 묘매리씨를 불러 세워 노래를 부르게 했다. 당대 최고의 메가 히트곡, 김지애의 '얄미운 사랑'을 구성지게 불러대 반 전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그녀. 노래 한 소절을 끝마친 뒤에 꼭 따라붙는 얘기들은 '너 이다음에 커서 꼭 가수 돼라' 그 한마디를 버팀목 삼아 지금의 자리까지 온 묘매리씨였다.

"중학교 3학년이던 때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나로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었어요. 돈이 모이면 통기타를 사거나 전자키보드 같은 악기를 구입해 음악 공부에 매진해 왔습니다."

묘매리씨는 유년 시절 불후한 시절을 보내야 했다.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음악 공부를 하기란 쉬운 일 이 아니었다. 그는 채변봉투, 치킨봉투를 만드는 일부터 혼자 가내 수공업체에 발품을 팔아 리본 땜질 아르바이트를 할 만큼 생활력이 강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는 가수의 꿈을 놓을 수 없었다. 그는 경기도 화성의 친구 집을 전전하며 꿈을 키워 나갔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30대 후반이 됐을 무렵, 문득 생각이 떠올랐다.

"생활에 치여 살다 보니 잊고 있던 것이 하나 있더라고요. 아 나는 가수가 되고 싶은 사람이었지. 더 나이 들기 전에 그 꿈을 이뤄야겠다고 생각했죠."

우연인지 필연인지 3년 전 생명보험사 콜센터의 직원으로 근무를 하던 묘매리씨에게 지역 가수 일을 하던 지인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게 된다. 소개해 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작곡가 노윤태였다. 그때의 인연으로 트로트 음악방송국 DJ활동과 가요제의 참가 기회가 주어졌다.

이름을 조금씩 알려가던 중 그에게 다시 한번의 시련이 닥쳐왔다. 헤픈 씀씀이 탓에 신용불량 처지에 놓이게 된 그는 함께 지내던 친구가 이사를 가자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됐다.

삶이 지쳐갈 즈음, 신도 묘매리씨의 인생을 가혹히 여긴 것일까?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마침내 그는 지난 7월20일 트로트 음원 '사랑의 자물쇠'를 발표했다. 김지은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지난날을 뒤로하고 묘한 매력의 목소리 '묘매리'로 새롭게 태어난 순간이었다.

"내 목소리가 담긴 음원이 세상에 공개됐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또다시 꿈을 꾸고 앞을 향해 정진하는 신인가수 묘매리가 되겠습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