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

아무리 노력해도 이뤄지지 않을 때 흔히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갑질'이라는 고질적 병폐에 충격을 받아 왔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없어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져 왔다. 글로벌 투자 회사의 30대 지사장이 자신을 수행하는 운전기사에게 폭언과 갑질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제기됐다. 운전 중인 기사에게 물건을 던지거나, 법규를 위반하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아파트 경비원을 향한 주민의 '갑질'도 끊이지 않고 있다. 경기도 화성의 한 아파트 주민은 경비원을 개에 비유하며 욕설과 폭행을 저질러 시민들의 공분을 샀다.

'갑질'이라는 용어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이며 사회병리학적인 부분을 여실히 드러낸다. 심지어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이 사건들을 소재로 '갑의 횡포'를 풍자해 을들의 공감을 자아내며 인기를 끌 정도다. 갑을 관계는 계약서에서 계약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법률 용어였던 '갑(甲)'과 '을(乙)'에서 비롯됐다. 애초 갑을 관계는 수직이 아닌 수평적 의미를 나열한 것이었지만, 유독 우리나라에선 아직까지 상하(上下)관계나 주종(主從)관계로 각인되고 있다.

옛말에 기존 질서나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닥치면 변화를 주어 통하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라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도덕은 반드시 행해야 할 바른 길이며 의무는 마땅히 해야 할 직분이다.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는 초기 로마시대에 왕과 귀족들이 보여준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동체 정신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러한 상호존중 의식은 한 시대를 이끄는 동력이요, 국민 화합의 원천이다. 사람이 사는 곳에 다툼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일방적인 횡포, 즉 '갑질'을 바라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배려와 존중은 과연 어디로 갔는가?

배려심이 많고, 약자를 도와주며, 너그러운 사람을 우리 사회는 기다린다. 우리 민족 핏줄에는 그런 마음이 각인되어 있다. 대대손손 전해져 내려오는 덕목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요즘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바로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조문이다. 이 조문에는 모든 국민은 평등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바위는 죽은 것이지만, 계란은 살아서 바위를 넘는다. 끝내는 계란이 바위를 이길 수 있기를 바란다.

/정석윤 농협구미교육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