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최근 국제학술행사를 위해 중국과 일본을 찾았다. 자주 다니는 곳이라 새로울 것도 없지만, 한국과 치열하게 경쟁하는 나라인지라 변화된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는 것이 방문 목적 중 하나이다.
북경 공항에서 입국수속을 하며 신분확인을 위해 도입된 새로운 시스템에 잠시 당혹감을 느꼈다. 변해가는 시스템에 유학파 국제인임을 자처하던 신분이 공항사정도 모르는 시골사람으로 추락한 느낌이었다. 여권만 제시하면 끝났을 예전의 입국심사와는 달리 기계 앞에서 여권을 대고 지문날인과 함께 쓰인 대로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그간의 오랜 경험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돔구장을 건설해 야구를 실내에서 하게 만든 일본에 놀랐는데, 북경의 공항은 드넓은 산과 들에서나 하는 골프마저 실내에서 하게 만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여 내 상상력을 압도했다. 거대 중국이 보여주는 규모에 발상의 차이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미세먼지와 황사의 발원지로만 생각하던 중국이니 그 정도가 훨씬 심하리라 생각했지만, 그럭저럭 마스크 없이 보낼 수 있어 의아했다. 참가인원이 많아 이동에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치안이나 청결 면에서 다소 꺼려졌지만, 예상과 달리 한국과 다름없는 훌륭한 시설이었다. 대중교통 이용이 거의 없던 나에게 대중교통의 유용함을 일깨워준 중국이어서 아이러니했다.
북경외대에서의 학회는 학부 3학년의 공항 마중과 안내가 있었는데, 그의 유창한 일본어에 깜짝 놀라 그 배경을 물어보니 중국의 엘리트교육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학생은 외국어고가 아니라 외국어중학을 나와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다고 한다. 중학교 때부터 선발하여 공부를 시키니 그럴 법도 했지만, 말쑥한 모습에 바른 예절, 거기에 일본어 능력까지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학의 규모도 한 학년에 1000여명의 적은 수밖에 뽑지 않는다 하여 인구대국 중국에서 그럴 수 있는가 하며 다시 한 번 놀라야 했다. 국가가 적은 규모를 유지하라 한다니 치열할 입시경쟁이 떠올랐다.

인천에서 1시간 반 정도면 도착하는 일본의 나고야는 섬인 중부국제공항을 통해 들어간다. 교통이 철도중심인 일본인만큼 공항에서 1인당 1만2000원의 쾌속운임으로 30여분을 달려 나고야역에 도착했다. 잘 먹어 좋은데 운동을 하지 않아 늘 걱정 속에 사는 한국생활이다. 건강을 위해 걷는 삶이 생활화되어야 하는데, 일본은 걷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어서 과음과 과식만 피하면 건강한 여행을 즐길 수 있다. 4일간의 일정에 일행 모두 하루 2만보 가까이 걸었다. 경비절약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정소화에 걷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자는 일본여행이 피곤하다.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마시며 걷고 또 걸으며 '이것이야말로 평소 추구해야 할 건강한 삶의 모습인데'라는 생각에 기쁘기만 했다.

인구 200만의 나고야는 300만의 인천보다 작은 도시이다. 그런데 웬걸 웅장한 나고야역 주변의 수많은 인파는 인천에서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는 거닐 수 없었다. 고층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나고야의 전경은 인천의 존재를 숨기고 싶을 지경이다. 3대도시를 지향하는 인천시의 미래에 숨가쁨을 느끼는 대목이었다. 지하통로로 연결된 역 주변 고층빌딩들의 수많은 식당은 사람들로 만원세례를 이뤄 여럿이서 들어가 함께 식사하기가 힘들었다. 무리를 하며 살아가는 일본인들이 아닌데, '일본의 경기가 이렇게 좋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고야의 한 여대에서 인하대로 언어문화연수를 오는데 첫 방문 학생들을 만났다. 4학년인데 공부에 뜻을 둔 학생 외에는 전원 취직이 결정되어 있었다.

인산인해를 이루며 활황을 보이는 경기와 졸업하기도 전인 지방여대생 모두 취업이 결정되는 일본의 상황은, 안정은 온데간데 없고 늘 전쟁터와 같이 격랑 속에 사는 한국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한국의 원화만은 고공행진을 거듭하여 일본에서도 돈쓰기를 재촉한다.
북경과 나고야 방문은 발전하는 거대 중국과 안정 속에 경제성장을 구가하는 일본을 보며 한국을 되돌아보게 한다. 부국강병밖에 없다. 통일한국을 이뤄내고, 개인의 우수한 역량이 내부혈투로 소모되지 않고 국력으로 결집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