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0월1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교섭의 타결을 발표했다. 미국과 캐나다 간 합의가 9월30일 성립함으로써 멕시코를 포함한 3개국 간 무역협정을 유지하게 되었다. 신협정 명칭은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이다. USMCA 협정문은 34장의 조문과, 투자·금융·서비스·국유기업에 관한 부속문서, 개별 약속사항 등을 기재한 사이드 레터로 구성되어 있다. 미국 주도로 탄생한 USMCA는 향후 당사국 간 서명, 의회 승인 절차 등을 거쳐 발효하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USMCA 합의 의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첫째, 노동자 보호, 디지털 경제, 특허, 금융서비스 등의 분야에서 높은 수준의 합의가 성립했다. 둘째, 멕시코와 캐나다가 노동·환경·지적재산 보호에 관한 새로운 합의를 받아들였다. 셋째, 미국의 농가와 낙농가에 대한 멕시코와 캐나다의 시장 접근을 개선했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를 분리하여 양국 간 협상을 추진하는 전술을 통해 멕시코와는 주로 자동차 부분에서, 캐나다와는 유제품 부분에서 합의를 끌어냈다. USMCA 협상 과정에서는 한미 FTA 개정 협상과 마찬가지로 '고율 관세 부과'를 무기로 개별 양자 협상을 압박해 미국 쪽에 유리한 무역구조를 이끌어내는 트럼프식 협상 전략이 두드러졌다.

트럼프식 통상정책이 잘 반영된 USMCA에는 미국우선주의를 실현하는 관리무역의 색채가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명칭에서 자유무역이라는 문구가 빠졌고, 멕시코와 캐나다의 자동차 수출에서 대미 수출 수량을 제한했다. 자동차 분야에서 미국시장으로의 무관세 수출은 '특권'으로 간주되었고, 기업이 이 특권을 누리기 위해서는 원산지 비율을 현행 62.5%에서 75%로 인상하고 시급 16달러 이상 노동자에 의한 생산비율(40∼45%) 준수 등 USMCA가 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현행 협정 하에서는 외국기업이 해외에서 많은 부품을 멕시코나 캐나다로 반입하여 완성차를 조립하고 이를 무관세로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요건에 주요 부품의 역내 생산 의무화를 추가로 덧붙였다. 현지 생산하는 자동차에 대해 엔진이나 변속기 등 주요 부품을 3개국에서 생산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대상인 부품은 엔진과 변속기 이외에 완충기, 전기자동차 등에 사용되는 충전지 등 7개 품목에 이른다. 이 중 하나라도 역외에서 생산된 것을 사용할 경우 그 차종은 역내 생산차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3개국 간 무관세로 수출입을 할 수 없게 된다.

USMCA는 신세기의 냉전선언을 의미하기도 한다. 디지털무역, 국유기업, 환율정책 및 비시장경제 조항은 중국 봉쇄를 염두에 둔 것이다. 특히 비시장경제 조항은 3개국 중 어느 한쪽이 비시장경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면, 남은 2개국은 6개월 전 통지로 USMCA를 종료하고, 2국 간 협정을 맺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비시장경제국이란 명시적이지는 않지만 중국을 지칭한다. 이 조항은 미국으로부터 관세 보복을 당한 중국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이용하여 우회적으로 수출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보면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중국과의 FTA를 금지하는 명령이다. 비시장경제국과의 통상교섭 통지의무는 일본과 EU와의 통상교섭에서도 요구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RCEP, 한중일 FTA, 중일 FTA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USMCA는 글로벌 통상질서에서 새로운 템플릿(표준)의 등장을 의미한다. USMCA는 다자주의와 메가 FTA의 트렌드를 양자주의로 되돌려 놓는 상징적 사건으로 WTO 다자무역체제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 이어 멕시코, 캐나다와 원하는 조건대로 협상을 타결했고, 일본과 EU와의 협상을 앞두고 있다. 미국은 향후 USMCA를 일본과 EU 등 자국과의 FTA를 원하는 상대국과의 양자 협상에도 적용하여 미국우선주의를 실현하고 중국 견제를 지속할 것이다.

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글로벌 통상질서의 주요 부분은 이미 TPP11(포괄적·선진적 TPP 협정)에 포함되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TPP11에 참여하는 것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과 연대하고 중국과 친화하는 '연미화중'의 밑그림 아래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는 포지션은 북핵문제의 교착화와 트럼프식 통상정책의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USMCA가 최종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한미 동맹을 근간으로 통상외교 정책의 중심축을 설정하되 TPP11이라는 통상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환경변화에 따른 대응전략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