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섭 국회의원 인천부평구갑


"GM은 한국에서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됐다. 국내 완성차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도록 아낌없는 지원을 하겠다." 지난 5월 올 초부터 시작된 한국지엠 사태를 종식하고자 우리 정부와 지엠 간에 상호협력 MOU를 체결한 자리에서 베리 앵글 지엠 총괄부사장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했던 말이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한국지엠의 법인분리를 둘러싼 지엠과 산업은행 간 소송, 한국지엠 노동자 반발 등으로 새로운 논란에 휩싸여 있다. 앞서 지난 7월 지엠은 한국지엠이라는 하나의 법인을 생산과 연구개발 두 부문으로 분리한다고 하면서, 연구개발 역량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정부와 지엠 간 MOU에도 나와 있는 "한국 내 핵심기술 R&D 역량 강화"라는 명목으로 지엠이 약속한 바이다.

겉으로 보자면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능력을 강화해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는 차원인데, 왜 논란과 갈등을 빚는 걸까? 그 원인을 밝히기 위해선 올해 초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지난 2월 설날 연휴를 앞두고 한국지엠이 돌연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하면서 지엠이 한국시장에서 철수할 것이란 위기론이 대두됐다.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게 됐고, 국가적 측면에서도 60년 넘는 기업의 존폐위기가 산업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감에 빠졌다. 정부는 산업부를 주축으로 구조조정 협의체를 구성하고, 한국지엠 2대주주인 산업은행을 내세워 지엠과 협상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한국지엠 노조도 강성노조라는 선입견을 깨고 3000여명의 희망퇴직과 임금삭감, 복지축소에 합의하며 기업의 군살빼기에 적극 협조했다. 결국 지난 5월 정부와 지엠 간 MOU체결로 모든 위기가 끝나는 듯했다. 지엠은 한국에서의 장기간 사업 영위를 약속했고, 정부는 8000억원에 달하는 한국지엠 지분투자와 자동차부품 산업 예산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합의서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새로운 갈등으로 번졌다. 서로 불신이 싹 텄기 때문이다. 한국지엠의 법인분리 추진이 지난 합의에 없던 터라 뒤통수를 맞은 격이 됐다. 약속에 없던 얘기를 불쑥 꺼내니 그 말의 진정성에도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노동자 입장에선 지엠이 연구개발과 생산 부문 둘로 쪼개면서 연구개발 역량을 강화하기 위함이라 내세우니, 나머지 생산 부문은 나중에 버리기 좋게 가기 위한 것이라 여길 수밖에 없게 됐다. 지엠은 걱정하지 말라면서도 노조를 만나주지 않고 있다. 그러니 불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아울러 국정감사에서 지엠의 법인분리 강행이 정부와 체결한 MOU를 위반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엠이 산업부와 협의하도록 돼 있지만 전혀 지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정부는 항의 한 마디 못하고 수수방관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우차로부터 이어져 오던 완성차기업으로서의 역사가 이제 끝난다는 점이다. 두 개 회사로 쪼개지면 지엠 본사로부터 내려오는 용역으로만 먹고사는 하청회사로 전락할 수 있다. 이러자고 수천억원의 국민혈세를 한국지엠에 넣기로 결정한 일은 아닐 텐데 말이다. 이것이 기우에 불과하다면, 한국지엠 노동자와 우리 국민에게 지엠이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 카허카젬 한국지엠 사장이나 베리앵글 지엠 총괄부사장의 말은 이제 못 미덥다. 메리바라 지엠회장이 나서 직접 밝혀야 한다. 정부와 여당도 5월 합의가 종이쪽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라도 갈등 진화에 당장 나서야 한다. 남북정상회담,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이슈 때문에 졸속으로 합의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여전하다.

부평에서 태어나고 자라 평생을 살면서, 한국지엠 사태가 촉발되자마자 당 대표에게 달려갔다. 당 지엠대책 특별위원회가 구성되고 위원장을 맡게 됐다. 이후 해법을 마련하고자 수차례에 걸친 현장방문과 토론을 통해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백운규 장관을 비롯해 각계 전문가들, 그리고 속이 썩어 들어가는 노동자들과 발만 동동 구르던 중소부품회사 사장들을 만났다. 모두 하나같이 한국지엠이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기를 바랐고 끝내 이겨냈다. 그런데 한 고비를 넘기니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고비가 잇따라 오고 있다. 하지만 이 고비도 잘 이겨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국지엠은 단순히 부평과 인천만의 기업이 아니라,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상징적 기업이라는 자부심이 우리 모두에게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