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요즘 '고종'이 새삼 뉴스를 타고 있다. 지난 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황룡포를 입은 고종의 초상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지난 달에는 1896년 아관파천 때 고종이 지나간 '고종의 길'이 일반에 개방됐다. 9월에는 탑골공원에서 '대한제국 군악대' 117주년 음악축제도 있었다. TV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영향도 있다고 한다. 대한제국이 그냥 망한 나라가 아니라 장렬히 저항했다는 스토리다.
▶과연 그러했던가. 대한제국은 제국다웠고 고종은 황제다웠던가.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 이희는 일본의 메이지 천황과 1852년생 동갑내기다. 그러나 메이지는 근대화의 리더, 고종은 망국의 암군으로 갈렸다. 물론 메이지는 신체제의 머리였고 고종은 구체제의 꼬리였다. 망국의 책임을 고종에게만 묻는다는 것도 말이 안된다. 그래도 위안부든 징용이든, 비극의 씨앗을 뿌린 허울뿐인 제국이었음엔 틀림없다.
▶이문열의 초기작 중 '황제를 위하여'란 소설이 있다. 정감록에 홀린 과대망상증 정도령의 '황제 놀이'가 그 줄거리다. 어린 날 열병을 앓던 정도령은 비몽사몽간에 "이씨들에 맡긴 삼한(三韓)을 거두어 넘기노라"라는 하늘의 소리를 듣는다. 일본이 조선을 합병하자 '이는 하늘의 뜻'이라며 계룡산 골짜기 한 부락을 동원해 이른바 '거병(擧兵)'에 나선다. 비록 일본군 일개 분대에 일패도지(一敗塗地)하고 말지만. 만주로 도망가서는 소작인들을 백성으로 '남조선국'을 세우고 황제에 오른다. 연호는 신천(新天)이고 헌법격인 명천률(明天律)도 반포한다. 해방과 6·25, 4·19를 당해서도 남조선국에 거역하는 반역도당들을 몰아내려 수시로 거병한다. 마침내 '붕어'한 뒤에는 '남조선 태조 광덕대비 백성제 지릉(南朝鮮太祖光德大悲白聖帝之陵)'이라는 거창한 묘비를 남긴다.
▶졸지에 왕에서 황제가 된 고종도 제국에 걸맞은 위엄 갖추기에만 급급했다. 1902년 국가예산 13%를 돌려 즉위 40주년 잔치를 준비한다. 열강 외교관들을 불러 사흘도리로 잔치를 열자 굶주린 백성들이 궁궐 너머로 기와조각을 던졌다. 아첨에만 능한 신하들이 때마다 존호(尊號)를 바쳐 존호가 62자(字)에 이르렀다. 고종황제를 제대로 부르려면 한나절이 걸렸다는 셈이다. '제국 놀이', '황제 놀이'나 다름없다.
▶'장렬한 제국과 황제'가 자기위안이어서는 안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하지 않는가. 다만 역사가 그때마다 다른 옷을 걸치고 나타나기 때문에 어리석은 이들이 모를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또 다시 허세에만 쩔고 쩔어, 대한제국의 모습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