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기초와 광역자치단체 단체장 및 시·도의원이 바뀐 지 5개월째다. 덩달아 지자체들이 내건 도시슬로건도 대거 교체됐다. 4년마다 되풀이 되니 새삼스러울 것 없겠다.
필자가 사는 곳 역시 시장이 바뀌었는데, 슬로건은커녕 시장 이름조차 알쏭달쏭하다. 홈페이지를 들여다보니 '살기 좋은 생생도시 안산'이란다. 명색이 시민이니 슬로건 정도는 외워줘야 할 것 같아 읊어 봤지만 몇시간 못가 까먹을 거다. 과연 살기 좋은지, 생생도시는 또 뭔지 당최 모르겠으니 그렇다.
궁금한 김에 몇몇 도시슬로건을 살펴봤다만, 기실 거기서거기다.
남양주시 슬로건은 '수도권 동북부 거점도시 남양주'다. 무려 13글자를 불러들여 위치를 알리는 친절함(?)이 돋보인다. 고양시 슬로건은 '평화의 시작 미래의 중심 고양'. 뜻은 알겠다만 시민과 공감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몇몇 도시들은 '사람'을 앞세운다. '사람중심 복지도시 평택' '사람중심, 새로운 용인'을 비롯해 수원시의 오래된 슬로건 '사람이 반갑습니다. 휴먼시티 수원' 이런 슬로건들은 인본주의적 가치에 기댄다는 점에서 무난해 보인다.
이밖에도 언제 만든 것인지 알 수 없는 화성시의 슬로건은 '길이 열리는 화성시'. 뭔 길이 열릴지 알 수 없다만 간단명료해 좋다. 하나, 사족처럼 딸린 "The way to……"는 볼썽사납다.
도시슬로건의 원조는 2002년 선보인 서울시의 'Hi Seoul'이다. 하도 말 많고 탈 많았던지라 덕분에 제대로 홍보된 슬로건이다. 이후 앞선 도시 따라잡기 열풍이 불어 십 수 년 만에 대부분 도시가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쯤 되면 슬로건은 선택 아닌 필수 아이템이 된 셈이다.

그렇다면 도시는 왜 슬로건을 필요로 하는 걸까? 전문가 말을 빌면 도시 또한 장소 마케팅이 필요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CI가 지자체 내부 지향적이라면 슬로건은 도시 외부를 향한 것인지라 더 각별한 신경을 쓴다는 얘기다. 이에 더해 거의 모든 도시들이 앞 다퉈 슬로건을 내거니 뭔가 메시지가 분명하고 차별적이어야 한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도 경쟁하는 시대니 허투루 만들어 낼 순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노력은 무의미해 보인다. 지방정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도시슬로건과 CI 등이 수시로 뒤바뀌는 터, 길고 멀리 봐야 할 장소마케팅이 과연 가능한 것인지 따져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