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플러스] 미술작가 신재은 "똑같은건 싫으니까"
[서른플러스] 미술작가 신재은 "똑같은건 싫으니까"
  • 이주영
  • 승인 2018.1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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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들의 손에서 탄생한 작품을 접할 때 궁금하다.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솟아 오는 벅찬 감동부터, 머리를 흔들며 혀를 찰 정도로 화를 부르는 작품마저 흔하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들은 무에서 유를 탄생시키고, 자아가 담긴 작품에 대한 존경으로 마무리된다.


작품을 가만히, 찬찬히 살펴보자. 예술가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담으려 애썼을까 라는 연민과 애민의 감정을 투영시켜보자. 그러면 예술가와 작품, 내가 어느 순간 한 공간에 서 있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처음, 혼란스러웠다. 실험적인가, 아님 예술의 새로운 형태인가. 무지를 탓하며 작가 신재은(35)을 만났다. 똑부러진 작품 세상, 그리고 예술을 접하는 자세. 어느 것 하나 모자람 없는 신재은의 예술은 대체 어떤걸까.

# 엄마가 외출하면 … 가구배치가 바뀐다

경남 진주는 핫하다. 빼어난 자연 경관과 도시 곳곳에 담긴 이야기. 이 곳을 걸으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매력에 푹 빠진다. 그래서 진주가 고향이라는 지인을 만나면 부럽고, 그가 살았을 당시 진주는 어땠을지 괜히 궁금해 묻는다. 이 곳에서 신재은이 태어났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평범치 않은 작품의 원천이 진주는 아닐테지만 그런 곳에 연이 닿는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신재은은 도시와 어울린다. 아니 요즘에 맞다는 표현이 더 낫다. 그게 진주 다음 곳이 성남 분당이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분당은 자본의 상징이다. 신도시와 아파트, 계획된 공간. 그리고 자본에 여유로운 사람들. 이 모든 게 완벽히 어울린 곳이다. 여전히 분당을 중심으로 곳곳이 변신 중이다.

신재은은 분당에서 유년기를 다 보냈다. 아이에서 소녀로 성숙되는 과정에 분당은 공간적 개념 이상을 심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재은은 왜 예술을 하게 됐을까.

"아버지 친구 분이 예술을 하셨어요. 그래서 집 곳곳에 이 분의 작품을 접했어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이야기다. 아버지가 취미로 첼로를 켜시고, 부모와 함께 미술관 가는 길이 익숙했다.

신재은은 "뭐든 만들고 바꾸는 게 익숙한 어릴적을 보냈어요. 어머니가 밖에 나가시면 이 때다 싶어 집에 있는 가구 배치를 바꾸기도 하고 상자를 쌓아 블록을 만들면서 자랐다"라고 기억한다.

어릴 때는 바이올린을 했다. 엄마 손에 이끌려 바이올린 '영재'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 "싫다"는 생각이 밀려왔고, 음악이 아닌 미술에 관심이 많다는 본인 의지를 나타냈다. 예고 조소과를 갔다. 만들기 좋아하던 취미가 예고로 인도한 셈이다. "참 열심히 했어요"라는 짧은 답 속에 치열했을 학창시절이 그려진다. 그리고 대학에 가서도 조소를 익혔다. 대학원을 다니며 예술의 끈을 이으려 애썼다.

"부피감 큰 것을 좋아해요. 공간을 압도하는 작품, 가볍게 날리는 것보다 무게가 있는 것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신재은의 작품을 접할 때면 소외된 듯한 착각이 든다.

# 여러 도시 돌아봤지만, 인천은 '영감의 땅'

올해 신재은이 붙잡은 화두는 '가이아(Gaia·대지)'이다.

신재은의 작품에 한 큐레이터는 "신재은의 이번 작업이 기존작과 비교해 얼핏 성격이 바뀐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녀의 작업이 결국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재구성되거나 재구축된다는 점에서 일관된 흐름을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침묵의 탑 pink' 작품에 신재은은 "인천의 다양한 장소에서 채집한 흙을 쌓아 올려 지층을 만들었어요. 동시간대에 인천의 지표면을 덮고 있던 것들을 수직으로 재배열 시켜 나이테와 같은 시간차를 인공적으로 연출했습니다"고 언급한 뒤 "층의 가장 하단에 돼지 한마리가 발굴되어 나온 것처럼 흙 속에 파묻었고, 층의 가장 상단부에 도시의 지면을 이루고 있는 시멘트 층, 아스콘 층을 올렸어요"라는 의도를 밝혔다.

실제 통돼지가 작품 하단에 노출돼 시간이 지날수록 부패되는 과정까지 작품에 담겨 있다.

또다른 작품 '침묵의 탑 white' 역시 인천 지역의 다양한 장소에서 채집한 흙, 시멘트, 아스콘, 페인트, 돼지뼈, 파리떼, 구더기가 작품이다. 통돼지가 사라진 자리에 돼지뼈 무더기를 넣었다.

"단단한 지면과 대조적으로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한 불완전한 지층 깊은 내부를 보여 준다"고 작품을 해석하는 신재은, '대체 뭐지' 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다.

신재은은 여러 곳에서 작품 활동을 했지만, 인천이 좋단다. 오래된 도시, 부평에서 작업을 하며 영감이 떠올랐고, 지금 인천 아트플랫폼 레지던시도 '최고'라며 좋은점 여럿을 전했다. 또 수원 역시 "오래된 곳이라는 매력이 담겨 있는 곳"이라고 전했다.

고도만이 내뿜는 공간의 향기를 쫓는 것이고, 그 속에서 생활하는 도시인의 모습이 작품에 담겨지는 것이다. 그래서 인천 곳곳의 흙을 쌓아 올리며 이 곳에 천착하겠다는 결심처럼 읽힌다. 맨 저층의 돼지는 우리처럼 여겨진다. 도시 위에 살고 있지만, 어쩌면 도시를 구성하는 가장 하부 계층이 아닐까.

최근 부평문화재단에서 기획 전시된 그녀의 10번째 개인전 '가이아, 토끼가 뛰는 언덕'은 비슷비슷한 작품이 난무하는 미술계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모습이다. 복사기가 끊임없이 내뱉는 토끼, 번식력이 뛰어난 토끼는 모양새 비슷한 미술계가 투영된다.

올해 디자인 경향과도 비슷하다는 설명과 함께 신재은은 "내가 생각하는 미술은 다양성이 보장되고 기존의 판을 뒤엎는 것입니다"라며 "다들 똑같은 이야기, 작가는 다르지만 만들어 낸 이미지는 다 같은, 한마디로 우스꽝스러운 게 싫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참으로 당차기까지 한 그녀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에도 '장발'과 '단발'이 공존한다. "이게 제 모습입니다"라고 말하는 신재은, 그렇다면 다음 모습은 무얼까. 궁금해진다.

/이주영·이아진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 지난 6일 인천 중구 아트플랫폼에 있는 신재은 작가 작업실을 찾았다. 누가 봐도 그는 예술가였다. 오른쪽은 단발머리를 하고, 왼쪽은 긴머리를 한 그의 인상은 어떤 것보다 그를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 지난 6일 인천 중구 아트플랫폼에 있는 신재은 작가 작업실을 찾았다. 누가 봐도 그는 예술가였다. 오른쪽은 단발머리를 하고, 왼쪽은 긴머리를 한 그의 인상은 어떤 것보다 그를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이질적인 것이 좋다"는 그는 땅과 돼지, 복사기와 토끼, 아스팔트와 네잎클로버 등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혼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낸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

 

신재은 작가는

2009년에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2013년에 동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학업을 마친 뒤에도 그는 쉴 틈 없이 작업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자신의 작업에 대한 변화를 멈추지 않고,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2014년 서울 사이아트스페이스에서 '애정운상승프로젝트', 2015년 수원 대안공간 눈에서 '호황프로젝트', 2016년 서울 아트스페이스 플라스크에서 '무릉도원' 등 각기 다른 주제의 전시를 진행하면서 국내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현재 인천 아트플랫폼에 입주해 있으며, 올해 부평구문화재단에서 진행하는 부평영아티스트로 선정돼 '가이아, 토끼가 뛰는 언덕' 전시회를 열었다. 또 그는 자신의 재능을 시민들과 나누기 위해 예술의 전당 어린이 아카데미 미술교사와 계원예술고등학교 조소과 강사로 활동 중이다. 양구 백자 박물관(축발전_祝發展)과 분당서울대학병원(pink liver, 빨래)에서 신재은 작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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