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석 인천 연수구청장


책만큼 오랜 소통 수단은 없다. 아무리 SNS와 뉴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이지만, 텍스트의 통일성으로 치자면 책 만한 게 없다. 골목서점이 사라지고 인쇄매체의 영향력이 옛날같지 않아도 책은 늘 사람의 생각을 이어주는 정신적 메신저 역할을 해 왔다. 이를 지탱해 준 에너지가 바로 공공도서관의 진화다. 책과 시설을 갖춘 열람실이나 독서실쯤으로 여기던 공공도서관은 어느새 주민들에게 미래를 준비하는 필수적 창조 공간으로 진화한 지 오래다.

열람실 칸막이가 사라지고 실험적 주민 서비스와 공론의 마당으로 활용되면서 공공도서관은 국민주권 시대를 여는 핵심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지난 2006년 564곳에 불과하던 공공도서관이 올해 1010곳으로, 1인당 도서수도 1.01권에서 1.91권으로 모두 2배 가까이 늘었다. 1963년 첫 도서관법 제정 이래 오늘날 공공도서관은 문화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최고의 사회적 인프라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그만큼 공공도서관의 시대적 역할도 커지고 있다.

공공도서관의 시대적 역할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주목을 받고 있다. 11년간 전국에 76개의 작은도서관을 세운 한 금융사나, 13m 높이의 대형 서가 3개에 8만여권의 개방형 기업도서관을 세운 대형유통사의 얘기가 박수를 받는 이유다. 기업의 독선적이고 일방적인 이익추구를 제한하고 사회에 대한 공익적 책임이 부과되는 일은 당연하다. 그 책임은 특정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해관계자 모두의 이익 증대를 위한 공익적 책임이다.

요즘 송도국제도시 내에 인구 증가에 따른 신규 도서관 건립이 시급하다. 인구 12만명이 넘는 이곳엔 170㎡의 작은도서관을 포함해 소규모 도서관 3곳이 전부다. 전체 장서수도 도서권 권장기준인 1명당 2권의 절반 수준이다. 열람실을 갖춘 도서관은 아예 한 곳도 없다. 하지만 하루 3000명이 넘는 이곳 주민들이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형도서관을 요구하는 지역민들의 요구가 잦은 민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해결책은 가까이 있었다. 송도 3공구 송도동 115-2에 있는 9427㎡ 규모의 도서관 부지다. 소유자는 송도국제도시개발유한회사(NSIC). 연수구는 이곳에 중앙도서관 건립을 계획하고 있다. 땅을 토지조성원가 이하로 매입하더라도 건축비와 운영비 등을 합치면 400억원 넘게 드는 대형 사업이다. 진화하는 공공도서관의 역할에 걸맞게 송도와 연수구를 대표하는 '메인도서관'을 짓는 대역사다.

문제는 NSIC의 입장이다. 도서관 건립 계획은 없고 실수요자와 협의해 사업시행과 계획 변경은 가능하다는 것이다. 공익적 차원에서 도서관을 건립해 기부채납하거나 토지를 무상임대하는 기존 기업들과는 상반된 입장이다. 결국 공익적 목적의 도서관 부지를 놓고 기초자치단체와 거래를 하겠다는 얘기다. NSIC가 요구하는 금액도 토지조성 원가에 40%를 초과한 액수다. 더욱이 이 도서관 부지는 NSIC에서 준공해 국가·지자체·실수요자에게 매각하는 이해하지 못할 협약을 맺고 있다.

최근에도 기업이 공익적 차원에서 도서관을 기부채납한 사례는 많다. 인천의 영종하늘도서관, 청라호수도서관과 국제도서관이 2015년 LH에서 기부채납을 받았다. 고양시의 식사도서관, 신원도서관, 삼송도서관 등도 택지개발에 따른 기부채납 방식으로 도서관을 조성했다. 성남시 역시 판교신도시 개발이익 환원차원에서 판교어린이도서관을 기부채납 받았다. 결국 도서관 조성에 차질이 없도록 지구단위 계획변경에 이어 인천시의 건립비용 지원과 NSIC의 사회적 책임을 하나로 모아 풀어야 할 문제다.

NSIC는 요즘 주주사 전격 교체라는 진통을 수습하며 사업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시기능을 총망라한 컴팩트 스마트 시티를 내용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도시개발모델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NSIC가 꿈꾸는 컴펙트하고 스마트한 도시개발모델엔 주민들의 미래를 준비하는 공공도서관이 아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