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희 인하대 언론정보학과 4년

 

며칠 전 SNS에 "학기가 끝나고 나면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는 글이 올라왔다. "지식을 머리에 잠깐 저장해 놓는 기분"이라고 했다. 중간고사가 끝나고 마지막 학기의 절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지난 4년을 돌이켜보게 된다. 4년의 시간 동안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고 느꼈는가.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에 걸맞은 사고를 펼치고 현상과 사물에 대한 고민을 한 적이 있는가. 씁쓸하지만 지난 4년이 중등교육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는 느낌이다.

단지 암기한 내용을 답안지에 옮기는 순간 사라지고 말았다. 성적은 A로 채워졌지만 내가 배운 지식의 양과 질이 A 수준인지는 의문이다. 비단 학생만의 생각이 아니다. 교수들도 시험방식이 배움을 평가하는 방법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시인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빈칸 채우기 형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대학의 성적 평가방식이 단순한 형식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교육부의 대학평가라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찾을 수 있다. 대학평가의 '엄정한 성적 부여를 위한 제도'라는 항목이 대학의 시험 형식을 상대평가로 만들기 때문이다. 성적을 '엄정히' 부여하는 일은 성적이 쏠림 없이 고르게 분포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상대평가를 통해 각 점수의 인원을 제한한다는 의미다. 또 부여된 점수가 타당한지를 증명하기 위해 명확한 답을 요구하는 문제를 출제해야 하고, 결국 빈칸 채우기 형식으로 귀결된다. 미래 사회를 준비하는 대학교육의 질 개선이라는 대학평가의 본질이 암기식 공부방법의 결과를 낳고, 학생들은 '휘발성 지식'을 얻을 뿐이다.

사전에 따르면 대학이란 '학술에 관한 심오한 이론과 그 응용 방법을 교수, 연구함을 목적으로 하는 최고 교육기관'이다. 가르침과 동시에 학생들이 스스로 현상과 사물을 깊이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배운 내용을 단순히 외우고 빈칸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대해 재조사하고 자기 생각을 써 내려가야 하는 것이다. 실상은 어떠한가. 생각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기보다 시험 직전에 배운 내용을 암기하고, 이번 시험만 넘기면 된다는 안일한 태도와 미봉책이 앞선다. 학생은 생각할 기회를 잃고 깊게 사고하지 못한 지식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잊혀진다. 교육부와 대학은 과연 현재 대학이 대학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반문해야 한다.

대학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하고 학생들이 연구한 생각을 올바로 평가하기 위해 체계적인 글쓰기 교육이 시급하다. 하버드대학은 '익스포스(Expos)'라는 오래된 글쓰기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 '글쓰기와 사고력은 떼려고 해야 뗄 수 없다. 훌륭한 사고력은 훌륭한 글쓰기를 필요로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표적인 미국 MIT에서도 글쓰기 강좌는 필수다. 독일의 경우 모든 학교의 시험이 주관식 서술형으로 출제된다. '써야 생각한다'는 글쓰는 교육이 사회전반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글쓰기는 더 깊은 생각을 더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이끌어낸다는 주장이다.

한국 대학은 대학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유독 암기식 공부를 통한 상대평가 체제에 치우쳐 있다. 한국 대학의 글쓰기 수업은 대개 신입생 공통 교양과목 정도다.
자연계열의 경우 글 쓰는 기회가 흔치 않다.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간혹 글을 쓰는 수업이 있더라도 수강하지 않고, 암기식 수업을 더욱 편하게 생각하는 경향이다. 성적표가 A로 채워질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교육정책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 단순 암기, 그대로 쓰기식의 시험 형태와 상대평가는 대학의 진정한 역할 수행을 저해하고 학생들의 사고력을 억제한다.
더 높은 차원의 생각을 하고 대학에서 배운 내용을 장기간 기억해서, 사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도록 글 쓰는 수업이 확산되길 바란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공부 방법을 장려하고, 다양한 평가방식이 유용하다. 대학 4년을 낭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