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세대가 행복해질 공연 기대해도 좋습니다"
▲ 이병욱 인천 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

 


조화는 인천에 필요한 덕목이다. 그 덕목을 오케스트라에서 찾을 수 있다.

인천은 준비할 틈 없이 개항을 맞았고, 근대화의 기수가 됐다. 해방 후 조국 산업화를 책임졌고 지금은 대한민국 국제화를 앞장서 이뤘다. 인천항과 인천공항은 인천의 개방성을 상징하지만, 인천이 품은 300만 시민은 그에 맞는 문화를 맞이하기에 시간이 부족했다. 시민 개인의 소양은 대단하지만, 시민 모두를 감싸기 위한 시설과 필요한 문화단체 등은 부족했다. 그래서 인천시민은 늘 문화적 갈증을 호소하며 청량한 인천시립교향악단(인천시향)을 꿈꿨다. 순간만 사랑받는 인천시향이라면 극약처방이 가능했다. 실제 그런 시도가 몇 차례 이뤄졌지만, 그때뿐이었다. 인천시향을 군불처럼 오래도록 사랑 받고 시민이 품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시민 모두의 마음을 사야 한다. 그래서 이병욱(43) 지휘자가 인천시향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를 맡았다.

이병욱 마에스트로의 손끝에서 터져나올 마법 같은 소리가 300만 시민에게 소리방울로 터질 가능성을 엿봤다. 전통과 현대, 친근하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음악, 이병욱 지휘자가 꿈꾸며 걷고 있는 이 길에 인천시향이 동행하며 오는 16일 '아트센터 인천' 개관 공연을 준비 중이다.

8개월의 공백, 6·13 지방선거 후 바뀐 정치 상황. 인천시립교향악단이 짊어진 상황이었다.

지난 수 개월 객원지휘자를 통해 합을 맞췄고, 단원들의 마음 속 '우리'와 함께 할 지휘자를 점찍었다. 그리고 9월, 이병욱 지휘자가 인천시향을 이끌 제8대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에 선임됐다. 이병욱, 한국 음악을 이끌 차세대 주자로 곡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해석이 깊다는 평을 듣고 있는 그가 인천시향 상임지휘자로 결정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인천시향 역대 예술감독 중 가장 젊은 그가 관록의 인천시향 맥을 잇고, 역동적인 인천의 도시성을 담을 수 있을까란 기대와 걱정이 컸다.

기우였다. 지난 10월19일 제377회 인천시향 정기회에 이병욱 지휘자가 올랐다. 지난 4월 객원지휘자 신분과 6개월 후 상임지휘자 위치는 천지차이다.

떨리는 손끝을 바라보는 인천시향 단원들, 그리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관객들. 고요를 깨는 트럼펫의 장중함, 바그너의 리엔치가 울리며 단원과 시민들은 진정으로 이병욱 지휘자를 안았다. 역시, 인천시향을 이끌 재목은 이병욱 지휘자였다.

10월의 마지막 날, 남동구 인천문화예술회관에 짙게 깔린 만추는 올해도 시민과 호흡한 이 곳의 예술혼을 감싸 안았다. 만물이 끝을 향해 가는 이 때, 인천시향은 새로움의 싹을 틔웠고 이병욱은 다음 연주를 위한 공부에 쉴틈이 없다. 인천시향 상임지휘자 사무실, 취임 한달새라 아직 싸늘하지만 지휘 때면 얼굴 가득 풍부한 표정 만큼이나 이 곳이 어떻게 꾸며지게 될지 궁금증을 자아냈다.

이병욱 인천시향 상임지휘자 겸 예술감독. 그가 밟은 지휘의 길은 알차다.

14세, 아직 어리다. 예술을 논하고 미래를 설계하기에는 더 많은 경험과 시행착오가 필요할 때다.

'음악'은 어쩌면 이병욱 지휘자에게는 운명. 콘트라베이스를 하시던 아버지와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의 사랑 속에 커온 이병욱 지휘자는 아버지의 결단과 어머니의 헌신에 오스트리아로 유학길에 올랐다.

이병욱은 "전 어릴 때부터 지휘가 멋졌습니다. 피아노로 시작했지만 지휘를 꼭 하고 싶었고, 그 때부터 지휘를 사명으로 여겼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지휘를 하고 싶다면 떠나라. 한국에서 익히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외국에서 더 빨리 지휘의 경험을 쌓는게 낫다."

아버지의 묵직한 이 결단은 이병욱의 음악을 더욱 단단하게 했다. 그리고 하염없는 어머니의 사랑은 이병욱의 따뜻한 음악의 원천이다.

이병욱은 "얼마나 좋아요. 14살,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꿈꿀 수 있는 것도 많은 그 때 떠날 수 있다는 게 벅찼습니다"라며 "법 테두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뭐든 했던 유학시절"이라고 말했다. 원없이 즐겼고, 후회없이 공부했다. 하고 싶은 지휘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이 시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이병욱의 언급은 "그 때 무엇이든 열심히 한 만큼 다시 그 시절로 가면 행복해질 것 같지 않습니다"라는 뒷 말에서 끄덕여졌다.

그런 그가 불현듯 유럽의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서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지만, 얘기하지 않는 속 깊은 이유가 있을터.

되레 한국 생활은 막막했다. 학교 친구도 없고, 음악 시장은 그를 낯설어했다. "오직 실력으로 나를 알려야 했습니다"라는 그의 회상처럼 실력이 입소문을 탔고, 끊이지 않고 연주 일정이 달력을 채웠다. 대학교수 기회도 얻었다.

이병욱은 "한국에 온 처음 몇 해는 지휘봉을 잡을 기회가 몇 번 없어 삼시세끼를 집에서 해결했고, 유럽에서 벌어온 돈으로 살림을 이어왔습니다. 그 때 집에서 많이 애탔을 것 같습니다"라며 웃는다.

객원 경험은 많다. 그만큼 여러 오케스트라와 호흡하며 경험을 쌓았다. 그렇지만 내가 책임을 짓고 음악을 만들어 낼 상임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이번 인천시향 상임지휘자로 발탁된 것은 이병욱 인생 최대의 도전이자, 반드시 성공시켜야 할 목표이다. 특히 어머니의 고향인 인천에서 상임지휘자가 된 것은 '어머니의 품'처럼 푸근할 뿐 아니라 그만큼 실망시켜드릴 수 없는 사명이다.

이병욱은 "지난 4월 인천시향 객원을 할 때 정말 행복했습니다. 단원 한분 한분이 저를 반겨줬고 자연스럽게 훌륭한 무대가 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상임은 객원과 정말 다릅니다. 인천시향 단원 투표로 제가 뽑혔다는 것에 자부심과 단원 모두에 대한 깊은 신뢰가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인천시민의 귀는 깐깐하다. 수도권 틈 속에서 인천 예술이 맥을 유지하는 것은 '서울과 경기라는 큰 음악 세상에서과 견줘 인천에도 이런 소리를 낼 단체가 필요하다'라는 시민들의 절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인천시향 등 지역 예술단체가 시민의 이 절절함을 백분 채워줬는지에 대한 것이다.

이병욱은 잘알고 있다. 그는 "관객이 있기 때문에 인천시향이 존재하는 만큼 시민들이 찾는 인천시향을 위해 더욱 풍성한 레퍼토리로 접근하겠습니다"라고 각오한다. 처음부터 거창하게 다가서기 보다는 인천시향에 적합하고, 인천시향의 주무대인 인천예술회관에 어울릴 소리를 찾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이병욱의 "6살 아들이 제가 지휘하는 공연을 여러 번 찾으며 이제 훈수까지 두고 있습니다"는 농담에는 "나이에 무관하게 모든 세대가 듣고 행복할 수 있는 공연을 올리겠다"는 다짐이 묻어 있다. 그래서 언제가 될지 지금은 기약할 수 없지만, 곧 인천시향이 선사하는 공연은 "기대해도 좋습니다"라며 자신한다. "꼭 훌륭한 협연자와 함께 공연할 기회도 선사하겠고 시민이 찾고, 즐기고, 행복할 수 있는 공연 기획을 마련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하고 또 언급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이병욱은…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 수석
14살에 지휘자 꿈 안고 오스트리아행

무대 위 재치 있는 표정과 절도 있는 손짓으로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병욱 지휘자.

5살 때부터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한 그는 14살 지휘자의 꿈을 가지고 오스트리아로 유학길에 오른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국립음대 지휘과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전문 연주자 과정과 박사과정을 수료한다.

이후 독일 뉘른베르크 심포니, 체코 Bohuslav Martinu 필하모니, OENM(Osterreichisches Ensemble fur Neue Musik) 등에서 객원 지휘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으며, 2006년에는 잘츠부르크 시에서 주최한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 기념 축제의 오프닝 공연을 지휘해 호평을 받기도 한다.

귀국 후 이병욱 지휘자는 통영국제음악제(TIMF) 앙상블 수석 지휘자로 국내에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 KBS교향악단,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부천필하모닉오케스트라,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 등 국내 유수 교향악단의 객원지휘자를 역임하면서 저변을 확대했다. 현재 인제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