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실 아주대 교육학 교수

 

며칠 전 '백러시아'라고 불리던 벨라루스라는 나라에 다녀왔다. 유네스코 글로벌 학습도시 네트워크에 벨라루스 역사상 최초로 제2의 도시인 '비텝스크'가 선정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학습도시국제학술대회에 초청을 받아서다. 20여 시간의 비행 끝에 벨라루스의 수도 민스크 공항에 내렸을 때, 활기차면서도 역동적인 사람들의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동유럽에 위치한 내륙국으로 한때 백러시아와 벨로루시 등으로 불렸으나, 2008년부터 벨라루스로 한국어 공식 표기가 바뀌었다고 한다. 하얗다는 뜻의 '벨'과 민족을 뚯하는 '루스'의 합성어로 해석하면 '하얗게 순수한 루스'라는 의미를 지닌다.

잘 알려져 있지 않던 '동토왕국'으로 알고 있던 벨라루스였다.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로 큰 피해를 입었던 나라이자, 소련 해체 시 친 러시아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나라라는 정도로 알고 있던 곳이었다. 그런 벨라루스가 최근 혁신을 기조로 '창의경제 학습도시 건설'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유네스코 학습도시 글로벌 네트워크에 비텝스크라는 도시가 벨라루스 최초로 선정된 것 또한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유네스코 학습도시 선정 인증서가 전달되는 기념식장에 문화예술가의 전시회와 콘서트가 열리고 외교부 장관과 각국 대사들을 비롯해 많은 국회의원과 언론인이 참석하여 축하 메시지를 전하는 것도 극도의 관심을 드러내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 유네스코평생교육기구(UIL) 집행이사로 있는 덕에 필자가 대표로 유네스코학습도시인증서를 외교부 장관에게 전달하였다.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기도 한 벨라루스는 1992년 한국과 북한과 같은 시점에 수교를 맺었으며, 우리와의 교류는 그간 그리 활발하지 않은 편이었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한류 문화 호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한국어 강좌가 벨라루스에서 서서히 붐을 일으키고 있으며, 한국 유학생들이 벨라루스에 러시아어를 배우러 오기도 한다는 벨라루스 외교부 차관보의 설명이 흥미로웠다.
수도 민스크에서 열렸던 유네스코 학습도시 선정 기념식에 이어 비텝스크도시로 이동하여 벨라루스 전역에서 모인 교육 관련 종사자와 지역활동가, 연구자, 학자와 교수, 국회의원 등 수백명이 대규모의 2018 벨라루스 학습축제를 열었다. 축제의 이름이 매우 특이했다. '카라반 학습축제'였다. 과거 실크로드를 오가던 대상(大商)의 낙타행렬 의미를 담은 이 축제는 벨라루스 전역을 돌며 열흘 간 이어지는 독특한 학습축제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축제의 슬로건도 '행함을 위한 학습(Learn to Act)'으로 흥미로웠다. 벨라루스 전역 10개 도시를 돌며 '학습 이음'의 축제를 사람들은 이어가고 있었다. 비슷한 시점에 우리나라에서도 162개 학습도시가 전국적으로 축제를 열고, 부산 벡스코에서는 교육부가 주관하고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진행하는 전국평생학습박람회가 열렸다. 하지만 벨라루스처럼 열흘 간 전국 학습도시들이 특화한 지역 학습축제를 연결하여 펼치는 릴레이 축제 모습은 아니었다.
학습도시 조성 초기 단계에 있는 신생 학습도시 경험국인 벨라루스가 이러한 독특한 열정의 카라반 학습축제를 시도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기에 놀람과 기대 속에 감동을 받았다. 마을마다 도시마다 지역사회 구석구석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열린 배움의 장'으로 엮어내고 있는 사례들이 생생한 사진 자료와 함께 발표되어 해외 참석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지역의 문화센터와 문화예술교육기관, 박물관, 도서관, 대학, 기업 등이 함께 참여하는 그야말로 방대한 평생학습도시 스펙트럼이 펼쳐지고 있는 현장이었다.
평생학습도시 종주국이라고까지 불리는 한국의 선진 글로벌 학습도시 육성정책과 수범사례를 벤치마킹하고자 기조강연을 청하였던 덕에, 우리 사례를 생생하게 전하는 시간을 할애받아 발표를 하였다.

우리 162개 학습도시가 어떻게 독특한 방식으로 지역의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학습으로 엮어내고 있는지 다양한 사례를 공유하였다. 한국의 학습도시 성공사례와 경험에 진지함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질문을 퍼붓는 모습에서, 한국의 백의민족 전통과 역사를 닮은 그들의 미래가 꽤 밝을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기도 했다.
한국의 국제회의에 이미 서너 차례 왔었던 경험이 있다는 주최 측 관계자들은 계속 한국을 알고, 배우고, 다시 한국에 오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매 행사 시작과 끝에 그들이 나라사랑 마음을 담은 '우리는 벨라루스인'이라는 국가를 부르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다. 진지하게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를 제창하는 우리 모습과도 많이 닮아 있었다. 벨라루스어와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고 KGB 같은 러시아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는 벨라루스지만, 남다른 나라사랑 정신과 학습열정이 우리와 몹시 닮아 있다고 느꼈다.
비텝스크는 파블로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최고의 화가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회의에 참석했던 카라반 축제 사람들과 함께 방문한 샤갈의 생가 기념관 박물관, 아트스쿨을 둘러보며 이 곳 사람들의 문화예술 자긍심와 곳곳에 배어나는 학습정신의 향기로움을 만날 수 있었다. 길고도 화려했던 카라반 행렬이 학습축제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고단했지만 행복한 배움의 여정이었던 '벨라루스'와 카라반 학습축제에서 만난 사람들을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다. 정겨운 친구의 나라로 오래 기억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