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가을이 깊다. 깊은 가을은 뜨거운 여름보다 바깥나들이가 수월하다. 굳이 자동차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좋다. 가까운 산의 단풍도, 심지어 아파트 단지 수목들도 그 어느 명산 못잖은 풍경을 빚어낸다.
지난 여름 폭염에 처박아뒀던 자전거를 꺼내려다 그만뒀다. 걷기엔 멀고, 자동차로 가기에는 민망한 곳에 나들이삼아 다녀오려 했다. 한데, 헬멧이 문제였다. 가끔 자전거를 탈지라도 "헬멧 정도는 써줘야 한다"는 아내 강권에 못 이겨 마련한 물건이다. 하지만 마련했을 뿐 쓴 적은 없다. 가뜩이나 머리숱이 적은 터, 헬멧으로 눌러 놓는다면 어찌될까? 잠시 쉴 때 헬멧을 벗어야 할까? 그렇다고 내내 쓰고 있을 순 없잖은가? 이런저런 질문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모처럼 큰 맘 먹고 '라이딩'에 나서려다 만 건 정부 탓이다. 9월28일부터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라는 명령은 준엄한지라 뻗대기 어려웠다. 법은 지키라고 만들었으니 되도록 지켜야 한다고 보는 쪽이다. 비록 훈시규정이라 처벌이 없다지만 적발돼 한소리 듣는 것도 마뜩찮다.
필자와 비슷한 입장인 사람들이 꽤 많은지, 자전거 헬멧 의무를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자전거헬멧의무화 폐지 및 자전거활성화정책 마련 촉구 공동행동'이라는 긴 이름의 시민단체도 등장했다.
이 단체는 10월의 마지막 날 국회 의원회관에서 토론회를 열고 '자전거 헬멧' 정책을 탁상행정이라 일갈했다. 문제는 헬멧을 쓰지 않은 피해자가 아닌 '사고예방 정책'을 방기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기실, 정부가 국민 안전 보장을 위한 해법은 내놓지 않고 그 책임을 개인의 준수의무 따위로 떠넘기는 일은 흔하다. 그게 일 덜하고 예산 아끼고, 책임질 일 적어져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헬멧을 쓰면 안전할 것"이란 주장도 애매하다. 대놓고 아니라 할 수 없지만 '사고 원인'보다는 '사고 후 피해' 쪽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결국 이번 자전거 헬멧 정책은 필자 같은 소심한 '라이더'들을 자전거로부터 몰아내는 결과로 이어질 거다. 지자체 등 한 쪽은 자전거문화 활성화를 외치고, 다른 쪽은 자전거 진입장벽을 쌓아 올리는 현실. 이 참에 자전거를 내다 팔아야 할지 말지 고민이 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