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역사에서 보듯이 전쟁도 사소한 일이 국민의 감정을 지극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겪은 파란의 역사도 권력집단이 파벌을 이뤄 서로 감정을 해치는 싸움 탓에 주변 정세에 바르게 대응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같은 나라에서 같은 국민으로서 더불어 살아가지만 간혹 우리는 서로를 물리쳐야 할 경쟁자나 타도해야할 적으로 설정하며 타인을 끌어내리려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 해도 무턱대고 비난만 하려 드는 사회는 안 된다.

기회만을 엿보다가 그에 걸려들기라도 하면 옳거니 잘됐다하고 뭇매를 때리는 사회는 지양해야 한다. 적폐청산도 정의구현도 의롭고 이성적이어야 한다.
이미 실시간으로 뉴스를 공유하는 시대에 접어들어 매 사건마다 이를 평가하는 온갖 댓글이 달리고, 우리는 이 댓글을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건에 대해 다른 이들의 의견을 엿볼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면판단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잘된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다수의 의견을 통해 사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댓글에 대한 기대는 예상을 크게 빗나가 정 반대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댓글은 이미 괴물로 변질되어 사회를 혼탁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 법정사건으로 번지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사마다 달려있는 댓글에는 어법 무시는 기본이고 은어, 속어, 욕설 등의 무절제한 표현이 주를 이뤄, 아무리 기다려도 순기능이 회복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다. 설령 비판받아 마땅한 내용이라 해도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들로 점철된 댓글을 평상심을 가지고 대하기는 쉽지 않다. 인권이 대세인 이 시대에 댓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간 존중이나 배려는 오히려 금기사항이라도 되어버린 듯, 타인을 비판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처참하기까지 할 정도의 과한 막말이 주를 이루곤 한다.

광기의 인민재판처럼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한 댓글에 상처를 받는 정도가 아니라 분노하게 되는 경우도 많아, 댓글로 국민들에게 마음껏 욕설하는 연습의 장을 제공하자는 의도가 아니라면 방치해서는 안 될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댓글은 보는 이들 모두의 감정을 자극하고 분개하게 할뿐 언론의 자유는커녕 건전한 사회를 좀먹는 해악일 뿐이다. 기사의 많은 댓글로 이익을 취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인지, 사회에 끼치는 해악을 알면서도 댓글을 달게 하는 시스템은 당장 폐지해야 한다. 국민들을 분열시켜 서로 무절제하게 싸우고 대립하게 만드는 언로는 설령 지켜내야 할 작은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그간의 경험에서 충분히 보아왔듯이 없애는 것만이 최선일 것이다.

특히 외국기사에 대한 댓글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치욕의 역사를 만회하려면 신중하고 전략적이어야 할 텐데, 정녕 아무런 생각이 없는 것인지, 주워 담기 힘든 험한 댓글들이 봇물을 이룬다. 수출로 먹고살고, 남북문제 등 국제관계가 중요하기만 한 한국에 이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이 많은 이 시대에 외국에 대한 노골적인 욕설이나 비하발언 등은 위험천만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댓글에 접하고 감정이 상한 외국인들이 분개하여 자국의 혐한 여론을 부추기고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며 골탕을 먹이거나 치명상을 가해올 수도 있는 일이다. 누구나 감정이 상하게 되면 이상적 판단이 가로막혀 비이성적 행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저 마음에 안 들고 기분이 나쁘다하여 외국에 대해 아무렇게나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는 일로, 그런 기능밖에 구현하지 못하는 댓글은 개인을 욕보이고 나라를 곤경에 빠트릴 수도 있는 위험한 도구이다.
몇 명 되지 않는 1000여명의 의도된 의견조사를 그럴듯하게 포장해 그 결과를 전 국민의 뜻인 양 몰아가는 여론조사나, 조작되거나 욕설 투성이의 수많은 댓글이 국민의 뜻을 살펴보는 척도로 사용되는 일에 동의하기 어렵다. 신성한 언론의 자유를 갖다 붙이는 일에는 더더욱 그렇다. 분노조절장애의 비이성적 사회를 살아가는 이 시대에 댓글이 줄 수 있는 순기능은 기대하기 어렵다. 각종 매체에서 댓글기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해결될 일이지만, 지금과 같이 손 놓고 있는 정부의 무책임은 이해하기 힘들다. 바른 품성의 사람을 길러내야 하는 교육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