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오랜 세월 교육기관을 통한 정규교육은 7~8세 무렵 시작됐다. 외부와 단절된 나라나 부족이 아닌 한 대체로 그랬다. 일찍이 고구려 때 시작됐다는 ‘무학년제 교육기관’ 서당도 일고여덟 살 웃도는 아이들을 받았다. 일찌감치 문명의 은총을 받은 서구사회라 해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적어도 7~8세가 되기 전에는 가정과 가족 품에서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공감대가 오랜 세월 이어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인류의 오랜 교육문화는 19세기 초 들어 무너졌다. 이 무렵 영국에 4~6세 아이들을 위한 교육기관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이후 1840년 ‘유아교육학의 아버지’ 프리드리히 프뢰벨(Fröbel)이 독일에 ‘일반독일유치원(allgemeine deutsche kindergarten)을 세웠는데, 유치원의 원조로 꼽힌다. ‘아이들의 정원’이란 말 뜻 그대로 아이들의 감성과 본성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사고와 놀이를 중요시 했다는 점에서 인류에 끼친 영향력이 꽤 크다. 

프뢰벨의 교육론은 간명하다. 사람은 날 때부터 지닌 본성이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그러니 교육이란 결국 그 본성을 발현하도록 하는 여건 조성과, 스스로 뜻하는바 이루려 나아가는 과정이라 본다. 교육은 이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각자 주도적으로 본성을 가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거룩한 교육이념을 바탕으로 한 유치원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상품’이 됐다. 뭐든 시장의 논리에 따라 상품이 되는 시대니 유치원이라고 피해갈 도리 없겠다. 덩달아 상품화 된 유치원의 여러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다. 종종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영어 등 외국어 유치원이나, 코딩 조기교육 열풍이 불자 코딩을 가르치는 유치원이 등장하는 등 유치원은 ‘유아교육의 아버지’ 품을 벗어난 지 오래다. 

물론 이러한 시대적 추세를 막을 도리는 없다. 세상이 그리 변하니 교육이란 영토라 해 예외일 순 없겠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유치원 운영자들의 행태는 선을 넘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쓰라고 준 돈을 운영자의 사리사욕을 위해 썼다는 건 구실이 어떻든지 비난받아 마땅하다. 비록 교육이 시장으로 내몰린 시대일지언정 최소한의 도리는 져버리지 말아야 한다. 


/송경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