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기 지음, 시공아트, 432쪽, 2만2000원


르네상스 미술의 대표적인 후원자는 메디치 가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후원한 예술가들만 해도 미켈란젤로, 브루넬레스키와 도나텔로, 보티첼리 등이다.

그들은 물론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도 컸지만, 자신들 가문의 이익과 영광을 위한 목적이 더 컸다. 메디치 가문의 전성기를 일군 로렌초 데 메디치, 즉 로렌초 일 마니피코는 직접 시를 쓰고 음악을 연주하는 등 활발한 예술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예술가들을 후원했다.

하지만 그의 후원은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데 쓰였다기보다 고대의 귀중품을 수집하거나 고대 미술을 답습하는 예술 활동에 집중했다. 그는 예술을 이용하여 정치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더욱 열중했던 것이다.

양적으로 가장 많은 예술 후원을 한 메디치 가의 후손은 공작 코지모 1세였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로, 헤라클레스로, 모세로, 더 나아가 하느님의 도상으로 신성화한 작품을 주문했다. 자신의 정치가로서의 이미지를 강화시킬 인물들을 골라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메디치 가의 후원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 후원이란 단순히 예술 애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종교심, 이익의 사회 환원, 감상의 즐거움 외에도 가문의 지위 향상과 정치 선전이라는 목적이 섞였다는 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명문가의 여성들은 정략결혼으로 정치의 도구가 되곤 하였는데, 이사벨라 데스테는 이 현실을 최대한 활용하여 능동적인 삶을 살았다. 당시 여성들이 주로 종교화나 보석류를 수집했던 것에 비해 그녀는 안드레아 만테냐와 벨리니, 티치아노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같은 예술가들에게 직접 그림을 주문했고, 고대 조각품을 수집하기도 했다.

그녀가 주문한 그림이 '정숙함'을 강조했다거나 나체를 넣지 못하게 한 점 등으로 볼 때 '여성적 취향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받기도 하지만, 회화나 조각이 자신을 드러내는 수단으로 사용되던 당시 사회에서 그녀는 후작부인으로 최선의 선택을 했던 것이다.

이사벨라 데스테는 남편이나 가족에 기대지 않고 자신을 독립적으로 드러낸 초상화를 주문하고, 정숙함과 지성, 젊음을 담은 초상화를 제작하여 자신의 이미지를 형성했다. 하지만 쾌락적인 그림을 스스럼없이 주문한 남성 후원자들과는 달리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어쩔 수 없이 사회의 요구를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미술과 권력, 부와의 관계는 르네상스 시대에만 존재한 것은 아니다. 형태만 바뀌었을 뿐 오늘날의 미술에서도 공공연하게 드러난다. 이는 예술가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예술의 창작 활동을 제한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러한 상호 작용 속에서 예술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술과 역사, 사회를 통합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작품의 온전한 모습을 되찾는 계기를 제공한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