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남양주 다산유적지서 해배 200주 기념 '다산 정약용 … ' 진행
▲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사진제공=실학박물관

유배길 재현 행사 이어 고유제 등 선보여




실학박물관이 오는 21일 오후 4시부터 남양주 다산유적지(다산생가)에서 다산 해배 200주년 기념행사 '다산 정약용, 한강변 고향에 돌아오다'를 진행한다.

올해는 조선후기 대표 실학자인 정약용이 18년의 긴 유배를 마치고 고향인 마재(現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돌아와 대표작인 <목민심서>를 완성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목민심서>는 정약용이 200년전인 1818년 유배지 강진의 다산 초당에서 탄생됐다.

그는 <목민심서>가 완성되기 까지 유배 신세에 굴하지 않고 불굴의 의지로 저작활동에 몰두해 왔다.

특히 유교 경전의 모든 뜻을 밝혀서 정리하려는 의지가 강했다. 결국 대표적인 유교 경전의 뜻을 밝히게 되고 이를 토대로 경세서(經世書)의 저작에 돌입했다.

마침내 1817년 <경세유표>와 1818년 <목민심서>를 완성했다.

정약용의 유배 일화에 따르면 1806년 되던 해 신유옥사를 일으켰던 노론 벽파가 모두 제거되었음에도 정약용의 유배는 풀리지 않았다.

그의 아들이 징을 울려 원통함을 호소해 벼슬 없이 고향에 돌아가게 하는 벌로 낮추었으나 적극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 끝내 유배가 풀리지 못했다.

그 후 죄인 명부에서 삭제되어 해배(解配,유배에서 풀어 줌) 관문(關文, 동급 또는 하급 관에 보내는 공문서)을 보내주려 했으나 또다시 반대 세력에 의해 유배가 풀리지 않았다.

이후 아버지의 해배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던 아들이 해배를 적극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설득에 나섰지만 그때도 정약용은 옳지 않다며 천명을 기다리라고 타일렀다.

목민심서를 완성한 때인 1818년에야 비로소 해배 소식이 날아왔다.

이에 지난 9일 18년 동안의 긴 유배 생활을 마친 정약용의 해배길을 재현한 '해배길 도보단'이 강진 다산 초당을 출발해 21일 남양주에 도착한다.

이들을 맞아 풍물굿패 삶터가 준비한 길놀이와 고유제를 이번 행사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행사 관련 문의사항은 실학박물관 홈페이지(http://silhak.ggcf.kr)로 하면 된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