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정경부기자


인천일보 주차장에는 한국지엠 차가 즐비하다. 어림잡아 절반은 된다. 기자 선배들은 진담과 농담을 섞어 "인천사람이라면 쉐보레를 타야 한다"고 가르쳤다. 정치·경제부 부장, 정치팀장, 육아휴직 중인 사회부 차석과 전 유통담당 기자, 중·동구 담당기자 모두 쉐보레를 탄다. 변속기가 말썽이지만 짙은 고동색에 갈색 가죽시트가 마음에 쏙 드는 기자의 차도 역시 쉐보레다.
한국지엠 차를 산 인천사람 모두 비슷한 심정이 아닐까 싶다. 요즘같이 물류가 전 세계를 관통하는 시대에 우리 기업 물건을 사주고 싶다는 마음은 이유 없이 따뜻하다. 한국지엠이 철수설에 휘말릴 때마다 벌어지는 차 사주기 운동도 '함께 사는 인천'을 자각하도록 돕는다. 그런데 이런 착한 마음을 배신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한국지엠 연구개발(R&D) 법인 분리 논란을 바라보는 인천사람들은 속을 끓이고 있다. 얼마 전 철수설에 휘말릴 때, 인천사람들은 하나 같이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압박했다. 지역 기업을 살리자고 외쳤다. 이번만 지원하면 앞으로 인천에서 떠나지 않도록 잘 붙잡겠노라고 애원했다. 그게 불과 5~6개월 전 일이다.
한국지엠과 글로벌GM은 법인 분리를 통해 경쟁력을 키우겠다고 말한다. 이제 이런 말을 믿는 이는 별로 없다. 그냥 GM이 홈페이지(https://www.gm.com/)에 공개한 자료만 봐도 반박이 가능하다. GM이 지난 2017년 6월 시티 인더스트리얼즈 컨퍼런스(Citi Industrials Conference)에서 공개한 'GM 비즈니스 포트폴리오(GM Business Portfolio)'를 보자. 잠재적 이익(Profit Potential)과 GM 사업 능력(GM Franchise Strength)이 낮은(Low) 범위에 한국지엠이 속한 GMI(GM International)가 위치해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시장(Select GMI Market)은 검은색으로, 남은 GMI(Remaining GMI)는 노란색으로 표현된다. 여기에서 검은색은 철수(Exited), 노란색은 유지(Maintain)를 의미한다.

'남은 GMI'가 무슨 뜻일까. 이 자료만으로는 정확하지 않다. 그래도 유추는 가능하다. 이미 GM은 지난 5월 한국지엠 철수를 공언한 적이 있고, 지금은 R&D 법인을 따로 분리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다고 말한다. GM이 앞으로 R&D와 생산부문 중 무엇을 남길지는 뻔한 이야기다.
엄혹한 시장에서 이익을 좇아 투자하고 철수하는 게 기업의 생리라는 것은 맞다. 그렇다고 사회적 책임을 이렇게 무시할 수 있나. 더구나 인천시민들이 한국지엠에 쏟았던 '마음'까지 계산기에 올려 철수 여부를 가늠하는 숫자로 계산됐다면, 참으로 몹쓸 일이다. 19일 주주총회를 바라보는 인천시민의 마음은 그렇게 타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