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쌓인 삶의 흔적 안에 예술·문화 씨앗 뿌리다

 

▲ 우리미술관은 인천시 동구 괭이부리마을 한 가운데 있는 작은미술관이다. 문화소외 지역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사랑방과 치유의 공간으로 기능한다.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은 지역을 재해석한 작품을 창작해서 전시를 통해 예술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 '사람꽃, 김창겸, 7분, 미디어 아트'. 만석동 괭이부리 마을사람을 꽃에 비유해 표현한 작품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소중한 일상과 아름다움, 삶의 의미를 담아,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융합한 방식으로 꽃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사진제공=우리미술관

 


골목은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가기도 버겁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이 서로 의지라도 하듯이 처마와 처마를 맞대고 있다. 그 사이로 하늘이 길게 열려있다. 인천의 배릿한 바다 냄새와 지난한 삶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있는 만석동 괭이부리 마을이다. 그곳에 비집고 들어선 한 칸의 공간. 3년 전 '미술관'이라고 생뚱맞은 '이름표'를 덧댄 작은 미술관, 우리미술관이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은 예술적인 인프라가 부족한 대표적인 원도심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너머 문화적 불평등마저 무뎌진 곳이다. 평생 미술관 한 번 가 본적이 없을 것 같은 문화소외지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에 미술관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미술관은 이런 환경적인 한계를 극복하려고 젊고 발랄하며, 재미있는 기발한 작품 전시를 기획하기도 한다. 교육관과 사무실에서는 마을 어른신과 주부,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문화교육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미술관 근처에 자리잡은 창작문화공간, '만석' 레지던시는 시각예술작가들이 지역성과 역사성을 탐구하고 지역 주민의 삶 속에서 예술적 영감을 얻는 창작활동을 하는 공간이다.

이렇듯 우리미술관은 공동체적 삶을 토대로 인천의 지역성과 예술성을 가진 모두에게 열린공간으로, 만석동에 예술과 문화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이곳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짚어본다.

#낯선 경계 허물기

인천 동구 만석동 괭이부리마을 사람들과 길 건너 아파트 주민들은 한 동네에 살면서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지냈다. 그런데, 미술관은 지역 안의 이런 폐쇄성을 무너트렸다.

아파트에 살던 주부가 7~8년 만에 길을 건넜다. 미술관 교육프로램인 목공예 수업과 도자기 수업을 듣기 위해서다.

물리적 거리는 7미터 정도였건만, 심리적으로는 7㎞ 정도 떨어진 것 같은 '거리감의 벽'을 쌓고 살던 주민들이 '심리적 거리의 벽'을 허문 것이다.

미술관이 마련한 마을잔치 때는 아파트 주부들이 괭이부리 할머니들을 위한 배식봉사를 담당한다. 주부들은 오며가며 할머니들을 만나고 서로 인사를 주고 받는다.

"그거 뭐 사셨어요." "황토고구마예요." "아니야, 호박 고구마야! 맛있어…."
"나,선생님한테 줄 것 있어…." 그러더니 할머니는 집에서 뭔가 들고 나온다. "이거, 옥수수 삶은거야!"

그렇게 자연스런 말걸기를 이어가고, 정을 건냈다. 낯선 경계심이 누그러진 평범한 이웃이었다. 서로 미술관에서 목공예 등을 배우고 전시하는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사람이라는 접점을 공유한다. 이렇게 괭이부리마을은 서로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삶의 온기를 주고 받았다. 여기에 열린 사고의 예술가들과 젊은 청년들이 마을을 찾는 발걸음도 잦아지면서 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지역에 생기 북돋는 문화공간

인천시 동구는 인구가 감소하고 있는 인천의 대표적인 원도심 지역이다. 올해 인구 7만이 무너졌다. 특히 동구의 괭이부리마을은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지역이다. 하지만 현재는 소설의 쓰여 진 시기처럼 어린이들이 많지 않고 대다수 주민이 노인이다.

그래서 우리미술관은 어르신들의 여가와 문화생활은 물론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에도 주력하고 있다. 젊은 층이 들어와서 지역에 생기를 북돋아 주는 지역재생, 도시재생을 위해서다. 주부와 어린이들이 필요로 하는 문화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문화시설을 만들어나가고 있다. 작은 미술관에는 관람객이 그리 많지 않다. 슈퍼스타급 작가가 아니면 큰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미술관은 공동체적 삶을 토대로 인천의 지역성과 예술성을 가진, 모두에게 열려있는 사랑방으로서의 작은 미술관을 지향한다. 사람들의 삶 속에 존재하는 곳으로 문화예술로 숨쉬고 살아있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주민들이 교류하면서 예술적 감수성을 고취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지난 여름에는 많은 아이들이 방학숙제를 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았다. 마침, 아이들이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고양이를 주제로 하는 전시를 준비했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미술관에 오래 머무르도록 했다. 오는 10월 23일 매년 마을에서 개최하는 괭이부리 마을 잔치를 앞두고 있다. 주민들이 교육프로그램에서 배운 악기연주와 노래를 발표하고, 전시회에서 주민들의 작품도 전시한다.

#주민이 찾는 문화 사랑방

우리미술관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괭이부리마을 한 가운데 공간에 들어선 조그만 미술관이다. 문화예술 교육과 기획전을 통해 주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 사랑방을 지향하고 있다. 인천시 동구청으로부터 빈집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인천문화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공공문화시설이다.

기획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전시관과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교육관·사무실, 작가가 거주해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레지던시(창작문화공간 만석/금창), 예술창작공간인 스튜디오(공동창고)로 구성됐다. 문화나눔 프로그램은 어린이반, 주부반, 어르신반으로 운영하고 있다. 각 프로그램은 주민을 대상으로 문화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고 마을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우리미술관은 원도심에서 문화예술로 활기를 불어넣고, 특색있는 문화예술 콘텐츠로 사람들이 지역에 관심을 갖게 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와 지역 대학생들이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매년 지역대학과 연계한 아트프로젝트다. 지역의 예술관련 학과 대학생이 동구 만석동 지역을 탐색하고 참신한 시각으로 창작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지난해에는 인하대학교 시각디자인과(학부)에 이어 올해는 인천대학교 미술과(대학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2015년부터 주민과 함께하는 프로그 램을 진행한 후, 지역 내 작지만 큰 의미를 갖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차도를 사이에 두고 아파트 단지가 있는데, 거리상으로 가깝지만 주민들 간 심리적 거리로 이 차도를 건너 괭이부리마을을 오고가지 않았다. 그러던 주민들이 우리미술관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참여를 계기로 한자리에서 만나고, 마을잔치도 준비하며 서로를 이해하며 문화예술로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미술관은 단순한 단기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의 저변을 확대하려는 장기적인 안목으로 접근한다. 3개의 거점공간(시민향유거점, 예술창작거점, 참여형예술문화거점)을 중심으로 긴밀하고 유기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살아있는 문화예술공간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 구영은
▲ 구영은

 

"경계심 푼 주민들, 표정이 달라졌어요"

구영은 우리미술관 담당자

-미술관이 생기고 나서 마을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동네 분위기가 바뀌었다. 3년 째인 올 봄부터는 주민들은 미술관 식구들과 관람객들에게 낯선 경계심을 누그러 트리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 주고 있다. 문화로서 삶이 향상되는 것을 수치로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주민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경계했지만, 같은 이웃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난 그런 걸 몰라!"라고. 미술관 프로그램 참여에도 시큰둥한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시간나면 한 두번씩은 예술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해 민요도 배우고 한다.

-지난 3년 동안 성과는

▲주민의 삶과 일상생활에 미술문화를 확장시키고 지역 문화시설로 자리매김했다. 올해에도 현재 전시중인 <키치키치부두의 아이돌>을 비롯해 12회 전시를 준비(현재 10월 기준 9차 전시 완료)했다. 주민대상 교육 프로그램은 다양한 연령계층이 문화예술을 통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특히 2016년부터 지역설화인 '괭이부리 호랑이'를 주제로 미술, 음악, 연극 등 세개의 장르를 아우르는 통합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 시행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미술관의 모습은 사건이나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 지역 사람의 관심과 노고, 열정을 토대로 하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미술관 공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 다양한 시각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큰 성과라고 하겠다.

-우리미술관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은

▲우리미술관의 각 시설들은 복잡하게 연결된 골목길과 작은 집들로 구성된 지역 공간에 스며들어 있다. 평면작품, 설치작품 등 다양한 시각예술작품을 시민들에게 선보이고, 지역 및 공간의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전시를 선보였다.
시각문화를 확산하는 예술 공간이자 지역의 요구를 반영하는 공공문화시설로 기능하고 있다. 우리미술관은 전문 작가의 전시뿐만 아니라, 주민과 작가가 함께 만드는 전시와 주민 스스로 전시를 준비하는 전시 등 주민이 예술을 통해 성취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이 찾아오는가

▲예전에는 사람들이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인지도와 각종 언론에서 보도된 '쪽방', '가난' 단어를 떠올리며 이곳을 찾아왔다. 지금은 미술관 작품을 관람하고,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 많은 외부 사람들이 우리미술관을 찾는다. 주민들이 프로그램 참여자로 함께 만난다. 늘어난 방문객들은 괭이부리마을에 대한 사전정보 없이 전시 관람만을 목적으로 방문하며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또한 없다.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