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중심시대 주류 규정된 작품 파헤쳐
▲ 권보드래 외 12명 지음, 민음사, 428쪽, 1만6000원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학사'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같은 제목의 강의를 엮은 것이다. 강좌가 끝난 후 출간을 요청하는 관객들의 목소리에, 강연자로 참여한 열 명의 연구자를 비롯해 세 명의 연구자가 새롭게 필자로 참여해 펴냈다.

책은 바로 지금, 오랫동안 뚝심 있게 '페미니즘 프리즘'으로 한국문학사를 검토해 온 신진 여성연구자들이 1910~2010년대 한국문학사의 주요 마디를 점검하면서 한국문학㈔의 성별을 우아하고 거침없이 묻는다.

3부로 나누어 묶인 열세 편의 글들이 지닌 문제의식과 관심사는 근대문학, 신여성, 사회주의, 해방, '위안부', 교양, 전쟁, 남성성, 진보, 독재, 민주화 등으로 모두 다르지만 주류 문학사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규정한 '문학(성)'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는 않겠다는 공통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이를 통해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고 해석하고 비평하는 일, 그것은 전부 페미니스트가 해야 할 일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

1부에서는 한국에서 '근대문학'이라는 것이 형성되던 식민지기의 장면들을 조명한다. 이 장면은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등 이제는 한국문학사의 신화가 돼 버린 몇 개의 이름들로 기억할 것이다.

2부는 '한국문학사의 황금기'라 불리는 1950~1970년대를 다룬다. 손창섭, 김동리, 김승옥, 최인훈, 황순원 등 현재 문학 교과서에 실려 있는 정전들이 마구 쏟아져 나온 시기이자, '건국', '성찰', '불온', '교양', '혁명' 등 한국문학사가 가장 중요시하는 정의와 이상들이 활발하게 생겨난 때이다.

3부는 1970년대부터 오늘날까지 포스트-냉전 시대에 전개된 한국문학의 성격과 '민주주의'라는 이상의 가능성을 질문한다.

이 책에 묶인 열세 편의 글들이 지닌 문제의식과 관심사는 모두 다르다. 때문에 단일한 입장으로 수렴되기 어려우며, 때로는 충돌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글의 필자들이 공통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강연과 단행본 기획을 맡은 연구자 오혜진은 서문에서 "더 이상 주류 문학사의 남성 중심적 질서가 규정한 '문학(성)'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 한국문학㈔에서 유일하게 문학적 시민권이 부여된 주체인 이성애자 남성, 그의 관점에 동일시해야만 '문학'이라는 세계에 접속할 수 있었던 지긋지긋한 '해석노동'을 멈추겠다는 것이다. 무엇이 '좋은 문학'이고 '문학적인 것'인지, 어떤 작품이 한국사회의 새 민주주의를 상상하는 데 필요한 자원인지는 우리가 결정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