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사는 곳 근처에서 국화꽃 축제가 열린다고 해 찾아갔다. 아직은 공원개발이 안된 연희근린공원에서다. 제 철을 맞은 국화의 샛노란 빛깔에 눈이 시리다. 백만송이가 넘을 국화들에다 요즘 유행을 탄다는 핑크뮬리(외래종 억새)까지 온통 가을 잔치다.
▶축제장은 시민들로 붐볐다. 국화도 국화지만 드넓게 펼쳐진 황금들판이 더 화려했다. 나락과 과일들이 익어가는 이 곳 들녘 전체가 잔치판이었다. 허수아비가 춤을 추는 논둑길을 따라 황금들판 산책에 나선 이들도 많다. 저 들에 나간 아이들이 생전 처음으로 메뚜기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103만㎡에 이르는 연희공원은 장기 미집행 공원부지 하나다. 연희동 일대는 본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다. 들이 넓고 마을 뒤 야산에는 지금도 밤이나 도토리가 지천인 곳이다. 주변이 모두 개발됐지만 공원으로 지정돼 도심 속 농촌으로 남았다. 봄이면 모내기를 마친 들판이 푸릇하고 초여름엔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옛 농로를 걷다보면 마을의 당산나무였음직한 수백년 묵은 미루나무 등도 남아 있다. 백로나 두루미 등도 철따라 찾아오는 그런 들판이다.
▶이제 곧 그런 풍경도, 정취도 사라질 모양이다. 머지않아 공원개발 특례사업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민간사업자가 부지의 30%에 아파트를 지어 팔아 나머지 땅을 공원으로 개발하는 방식이다. 인천시가 공원개발 예산이 없어서다. 공원으로 묶어 놓고도 돈이 없어 방치된 땅이 인천대공원 부지의 3배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너무 천편일률적인 한국의 공원개발 방식이 걱정이다. 논도, 밭도, 과수원도 일단 다 갈아엎을 것이다. 거기에 그 땅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 온갖 수목들을 싣고 와 심을 것이다. 겉보기에 좋다고 어디 먼 나라의 풀이나 나무들도 이식될 것이다. 오랜 세월 물길이었던 시내나 도랑도 파묻히고 인공호수나 시멘트 수로가 대신할 것이다. 값만 비싼 조형물들과 벤치, 야외공연장 등도 단골이다. 시민들의 발길 닿는 곳들은 모두 포장해 흙 한 톨 묻힐 일이 없을 것이다. 백로, 두루미도 다시는 찾지 않을 것이다.
▶미개발 공원들의 사정이 다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자연이 충만해 있는 곳들에는 갈아엎기 일변도가 아니었으면 한다. 농로 산책길이나, 당산나무 그늘, 백로의 군무(群舞)쯤은 남겨두자. 안그래도 인공지능(Artificial Imtelligence)이 활개를 치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공원에서라도 인공 조경 대신 자연 냄새 좀 살려두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