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서림  


소설가 구보가 이상과 하릴없이 드나들던
종로 화신백화점 자리에
구름이 비치는 클라우드 빌딩이 들어섰다
시인 구보는 자신과는 생판 딴 세상인
클라우드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잠시 숨 돌리러 나온 삼성생명 직원들과
빌딩 밖에서 담배만 뻐금거리고 있다

낡은 슬라브집에서 허적허적 걸어 나온 구보,
신문을 펼쳐들다 빌딩 사이
가장 높이 떠서 흘러가는 새털구름을
고니같이 목을 길게 빼고 올려다본다
난수표 같은 경제면은 그냥 넘겨버리고
새털구름처럼 퍼져나가는 한숨을 내쉰다

아침을 거르고 나온 정리해고자 구보,
'낙원'상가 근처 북적이는 고향집에서
이천 원짜리 선짓국으로 허기를 채운다
잎 떨어진 은행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대학노트를 꺼내 시를 끄적거린다……



가을 아침에 이슬처럼 차고 쓸쓸해지는 시다. 시인 구보씨가 살아내는 삶의 방식을 통해 이 시대 우리 삶의 형태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시다. 어떤 시대나 가진 것 없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는 것이 버겁지 않을 때가 있었겠는가마는 날이 갈수록 속악해지고 부박한 현대 서울의 민낯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천원짜리 선짓국으로 허기를 채운' 정리 해고자 구보씨가 쓰는 시에는 세상의 어떤 모습이 그려질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사람이 한평생 산다는 것의 근본인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는 사람살이가 될 수도 없거니와 그 삶에 무슨 희망과 가치의 의지가 실리겠는가. 날이 갈수록 사람 사이 주고받는 눈빛에도 온기가 사라지고 서로 바라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세상의 살풍경을 생각하면 찬이슬을 머금고 물이 들어가는 단풍처럼 붉고 춥다. /주병율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