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관공사, 도입해 놓고도 위험성 낮다 판단 설치안해
1기당 20억원 비용 부담도
환경부, 의무화 법시행 준비

 

대한송유관공사가 화재 예방장치인 '유증기 회수 설비'를 도입해놓고도 정작 기름 탱크로는 확대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관련기사 19면

기름 탱크에서는 화재 등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데, 저유소를 관련된 규제 대상에서 풀어둔 정부의 허술함도 문제였다.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가스안전공사, 소방서 등 합동 감식팀은 11일 유증기 회수 설비 등 방재·보안시스템에 대해 정밀 감식을 벌였다.

앞서 경찰의 초기 조사에서는 고양 저유소 기름 탱크에 유증기 회수 설비가 없었던 것으로 나왔다. 나머지 13기의 탱크도 마찬가지로 설비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유증기 회수 설비는 휘발유가 증발해 유증기 상태가 되면 이를 회수해 액화하는 시설로, 유증기가 외부로 새어 나가는 것을 막는 중요한 장치다.

고양 저유소 탱크의 화재 원인 중 하나로 이 설비가 없다는 점이 지목돼 왔다. 또 공사 측이 사실상 불이 붙을 수 있는 위험성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고양 저유소에 유증기 회수 설비는 존재했다. 2011년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이 실시한 연구에서 35개 저유소에서 43% 수준인 15개 저유소가 유증기 회수 설비를 운영한 것으로 조사됐다.

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저유소 4곳 중 고양 저유소 등 2곳도 '설치 저유소'로 분류돼있었으나, 공교롭게 탱크를 뺀 출하가 이뤄지는 시설까지만 설치했다. 송유관공사 내부에서 탱크까지 확대하기엔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송유관공사 관계자는 "보통 공기와 기름이 접촉하는 곳에서 회수 설비가 필요하다. 출하는 탱크에 적재하는 과정이라 공기가 순환되는 경우가 많다"며 "탱크는 묻혀있고, 송유관이 연결돼있는 점을 들어 유증기가 우려되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연구에는 유증기 회수 설비 문제와 관련된 국내 저유소 업체들의 입장도 담겨 있었다.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우선 유증기 회수 설비를 설치하려면 1기당 약 20억원이 드는 비용이 부담이라고 여겼다.

업체들은 설치 기간 동안 운영에 제약이 발생하는 부분도 문제로 꼽았고, 정부 지원이 확대돼야 할 필요성도 언급했다.

특히 한국환경공단의 연구를 수행한 한국대기환경학회는 보고서에서 국내의 경우 저유소의 유증기 회수장치와 유증기 분해 장치에 대한 규정과 검사 기준은 설정돼 있으나, 미이행 또는 불성실 이행에 대한 처벌조항이 누락됐다고 지적했다.학회는 그러면서 실질적인 유증기 회수효과를 위해서는 법령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정부의 대책은 이 같은 연구결과를 반영하기는커녕 저유소에 대한 허점을 드러냈다. 정부는 2013년 들어 유증기로 인한 환경오염·인체피해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자 대기환경규제지역에 유증기 회수 설비를 의무화했으나, 저유소만 쏙 뺀 채 자율로 뒀다.

관할 부처인 환경부는 조만간 저유소 규제를 강화할 방침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저유소 저장시설, 비산배출시설의 배출한도를 조정하고 유증기 회수 설비를 의무화하는 법을 시행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현우 기자 kimhw@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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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관공사 과실여부 본격 수사 지난 7일 발생한 고양 저유소 화재를 조사 중인 수사 당국이 11일 5시간에 걸친 2차 합동 현장감식을 했다.이날 오전 10시부터 시작한 감식에는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가스안전공사, 소방서 등이 함께 했다.감식팀은 잔디에 붙은 불이 유증 환기구를 통해 폭발로 이어진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유증 환기구 주변 공기를 포집했으며, 유류탱크 시설 3D 스캔 작업도 벌였다.현장감식과 별개로 수사팀은 대한송유관공사 측 과실과 안전관리 책임을 묻기 위한 본격적인 수사에도 들어갔다.경찰은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인력을 지원해 수사력을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