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

 

지난 9월5일 수원 남창동 공방거리에 '열린문화공간 후소(後素)'가 문을 열었다. 1층 전시공간을 비롯해 2층에는 49살로 세상을 뜬 미술사학자 오주석의 서재가 마련되었다. 후소(後素)는 논어의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따온 말로 '사람은 좋은 바탕이 있은 뒤에 문식(文飾)을 더해야 한다'는 뜻이다. 주역을 공부하며 대산 김석진 선생에게 받은 오주석의 호이기도 하다. 수원 출신인 후소는 우리 옛 그림에 대한 안목을 맛깔난 글쓰기를 통해 보여주었다. <단원 김홍도- 조선적인, 너무나 조선적인 화가>(열화당, 1998)와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솔, 1999),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솔, 2003)을 들 수 있다. 그가 생전에 출간한 책이다. 이 중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은 4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다. 인문학 서적으로 40만부 이상 나가는 것은 흔하지 않다.

2016년 역사문화연구소(소장 유봉학)에 보관하던 오주석 소장 도서와 미술사 연구 자료들이 수원화성박물관으로 기증되었다. 소장했던 도서 2500권과 슬라이드 필름 2000매, 연구자료 9상자와 직접 사용하던 컴퓨터, 거문고, 연적, 목검 등 13점이다. 화성 안에 아담한 공간을 마련하여 2층에는 오주석의 기증 도서를 중심으로 한 '오주석 서재'를 장만하고, 아래층에는 우리 옛 그림을 배우고 공부할 수 있는 장소와 일반 시민들이 편안하게 찾아 차를 마시며 어울릴 수 있는 인문학 공간을 꿈꾸게 되었다.

오주석 서재가 마련된 곳은 쾌적한 정원과 근사한 정원수들이 아름다운 2층 건물이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하얀 2층집은 오가는 사람들이 들어가 보고 싶어 했던 백내과 원장집이었다. 1977년 건축가 김석철이 설계하여 신축한 건물이다. 김석철은 서울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것으로 유명한 명지대 교수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원에서 가장 유명한 남창동 99칸집이 자리한 곳이란 사실이다.
1600평이 넘는 대지에 수원 최고의 부자가 살던 집이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이래 '양성관 가옥'으로 알려졌지만 1861년(철종 12) 이병진이 지은 집이다.

한 세대 후 이 저택 소유자는 이근택으로 바뀌었다. 을사오적 가운데 한 명이었던 이근택(李根澤, 1865~1919)이다. 그는 1906년 2월 16일 서울 자기 집에서 기산도(奇山度, 1878~1928) 등 3명의 의사에게 칼을 맞았다. 10여 군데 중상을 입었으나 한성병원에서 치료하여 살아난 그는 급히 서울 집을 처분하고 수원으로 이사하여 1919년 죽을 때까지 살았다. 몇 년 뒤인 1922년 즈음 대저택의 주인은 양성관(梁聖寬, 1867~1947)이 되었다. 양성관은 당시 수원 최고의 부자로 경기남부 일대 논밭 90만여 평의 땅과 소작인 600명을 거느린 대지주였다. 이후 남창동 99칸집은 '양성관 가옥'으로 불리며 수원을 대표하는 주택으로 이름을 날렸다. 1950년 6625전쟁으로 피아가 차지하고 싶은 건물이었고, 넓은 저택 바깥채는 1951년 수원지방검찰청으로, 1950년대 후반까지는 남창동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수원의 실력자로 등장한 육사8기 출신의 이병희( 李秉禧, 1926~1997) 의원이 남창동 99칸 바깥채에 입주해 수원 정계를 호령했다. 그렇게 남창동 99칸집은 이래저래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물론 그때까지 남창동 99칸집은 양성관-양규봉-양인석-양승돈으로 이어지는 남원 양씨 소유였다. 그러나 1970년대 양씨가의 사업이 여의치 않아 남창동 99칸 가옥은 매매되었고, 1973년 10월 용인민속촌으로 옮겨졌다. 물론 예전 남창동 99칸집을 온전히 가져가진 못했지만, 그럼에도 한국을 대표하는 양반가옥으로 용인민속촌의 대표 얼굴로 되었다. 그 집을 배경으로 '대장금'과 '다모' 등 역사 드라마의 중요한 촬영장소로 활용되었다.

남창동 99칸 집터 1600여평은 현재 남창동 99번지 일대로 38개 필지로 분리·등기되었다. 그 가운데 오주석 서재가 자리한 남창동 99-28번지(653㎡)를 백내과병원 백성기 원장이 사들여 1977년 김석철 교수 설계로 2층 건물을 신축한 것이다. 이를 2017년 수원시가 사들여 리모델링을 해서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게 되었으니, 또 다른 명소임에 틀림 없다. 가까운 곳에 영화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한 한옥과 더불어 공방거리의 문화적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창동 공방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지난날 수원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문화공간이었던 남창동 99칸집의 존재를 다시금 되새기게 될 것이다. 역사적 장소는 기억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도시는 오래된 것들이 넘쳐나야 멋을 갖는다. 오주석의 서재가 이 땅의 역사를 알려주게 되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