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부터 잠자리까지 7㎏짜리 옷 18시간 착용
"허리통증에 모든 일 불편"
▲ 7㎏짜리 임신 체험복을 입고 아이 돌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허리를 굽히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움직이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으앙."
지난 9일 오후 8시 퇴근하고 임신 체험복을 둘러메자 14개월 된 아들이 울음부터 터뜨렸다. 낯선 모습에 당황한 줄 알고 다가가보니 똥 냄새가 지독했다. 6개월간 육아휴직을 하며 아이를 돌봤는데도 기저귀를 갈고 옷을 입히는 게 버거웠다.

10월10일 임산부의 날을 앞두고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에서 임신 체험복을 빌렸다. 체험복은 임신 8개월 차에 해당되는 7㎏짜리였다.

설거지를 하려고 부엌에 갔다. 수세미를 쥐는데 아랫배에 개수대가 걸리는 느낌이 났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체험복을 입은 지 1시간여 만에 이마와 등에 땀이 맺혔다. 아내에게 원래 허리가 끊어질 것처럼 아픈 거냐고 하자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한 표정만 지었다.

자려고 누우니 묵직한 무게감 탓에 숨쉬기가 힘들었다. 옆으로 자세를 바꿔도 불편하긴 마찬가지였다. 누울 때마다 이렇게 불편했는지 아내에게 묻자 이번에도 차가운 눈빛만 돌아왔다. 인구보건복지협회 인천지회 관계자가 "체험복을 입어본 남성들은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임부의 고통을 느끼며 진지한 태도로 바뀌곤 한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임산부의 날인 10일 출근길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오전 9시쯤 출입처인 부평구청에 도착했지만 주차장 양쪽 자리엔 이미 차가 세워져 있었다. 문을 열고 내리려는데 배가 걸렸다.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겨우 빠져 나왔다.

출근한 뒤에도 불편한 상황은 되풀이됐다. 책상에 앉으면 아랫배에 압박감이 전해졌고, 의자에 기대면 노트북을 쓰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나마 일하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인천시가 지난해 실시한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 1005명 가운데 22.6%는 직장을 그만둔 이유로 '자녀 출생'을 꼽았다.

이날 오후 1시30분쯤 인천 1호선 부평구청역으로 향했다. 계단을 내려가니 몸이 앞으로 쏠려 균형 잡기도 힘들었다. 주위 시선을 신경 쓸 여력조차 없었다. 교통약자 지정석은 노인들로 가득 찬 상태였다. 객실 가운데에 마련된 임산부 배려석 두 자리에선 일반 승객들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인구보건복지협회가 지난해 임산부 321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임산부로 배려받은 경험이 있었다'는 응답은 60.2%에 그쳤다.

10여분 만에 목적지인 간석오거리역에 도착했다. 눈앞에 보인 건 또 다시 계단이었다. 체험복을 반납하기까지 18시간 동안 허리 통증은 계속됐다. 체험복을 벗고 돌아가는 길,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맞은편에 앉았다. 분홍색으로 꾸며진 배려석에는 '내일의 주인공을 맞이하는 자리'라고 적혀 있었다.

/글·사진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