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금융노예'라는 신조어가 떠돈 지 오래다. 필자 역시 수십 년 '노예 팔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대물림 할 게 있다면 다 못 갚은 빚일 거다. 경험에 비춰볼 때 금융노예가 돼가는 경로는 다양하며, 누구나 쉽게 들어서도록 드넓게 열려 있다.

먼저 휴대전화. 딱히 돈벌이 없어도 고가 기기를 쉽게 장만할 수 있고, 이후 '약정(約定)'에 따라 갚아야 한다. 2010년 전체 이동통신 가입자의 67%인 3300만명이 약정노예였고, 10년 뒤인 오늘도 2800만명이 선택약정 등 그럴싸한 이름의 빚을 지고 산다.
자동차 역시 수많은 금융노예를 양산한다. 필수품이 되다시피 한 상품이지만, 가격이 최소 1000만원을 웃도니 빚 안지고 장만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울러 우후죽순 등장하는 새로운 생활가전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힘든 터, 짧게는 몇 달에서 몇 년 갚아가는 조건으로 덜컥 들인 모든 것이 금융노예의 굽은 등을 짓누른다.

어디 그뿐인가. 대학에 진학하는 젊은이들 역시 졸업을 보장받으려면 최대 수천 만원의 금융노예 신세를 감수해야 한다. 태반이 백수인 청춘들이 갚아야 할 돈이 한 해 동안 많게는 1조8000억원에서 적게는 1조1000억원 대라는 게 아무렇지 않다는 듯 여겨지는 현실이 괴이하다.
이 모든 것의 무게만도 버거운 터, 삶의 텃밭인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대목에 이르면 금융노예들의 퇴로는 거의 없어 보인다. 건설경기 부양과 아파트대출 규제완화 정책 등에 힙 입어 몇억 대출을 끼고 마련한 '내 집'은 조금씩 오래도록 살림을 갉아먹고 있지만, 원금은 10년 세월 그대로다. 그렇다고 언제고 갚을 수 있을 거란 보장조차 없으니 금융노예의 비애는 숙명이나 마찬가지다.

금융노예들이 지고 있는 빚, 즉 가계부채가 지난해 1천450조원을 넘어섰다는 소식이다. 한 해 전인 2016년보다 108조원 이상 늘었다. 늘 뿐 줄지 않는 현상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필자 같은 서민들은 이런 체제에 길들여져 순응할 뿐이다. 체제야 어쩔 수 없으니, 그저 노예생활이라도 할 수 있으면 다행이라 여기는 건지, 아무리 생각해도 헷갈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