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일의 마음산책] 농부는 굶어 죽을지라도
[이문일의 마음산책] 농부는 굶어 죽을지라도
  • 이문일
  • 승인 2018.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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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주간

 

"희망의 등불을 계속 밝히고 있으면 암흑 속에서도 견딜 수 있다." 유대인의 정신·문화적 유산인 탈무드에 나오는 격언이다. 절망하며 힘겨워하기보다는 내일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희망과 소망을 버리지 않는 한, 내일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어려운 현실을 뚫고 나아가는 슬기를 쌓을 수 있지 않겠는가.

마치 '투기판'처럼 그려지는 우리네 삶 속에서 땀을 흘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거룩하다. 누군가 무엇을 잃어버려 상심한 때를 이용해 이익을 챙기려고 하지 말자. 얻음과 잃음은 백지 한 장 차이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고,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는 이치를 깨닫자. 어떤 질병과 싸움을 벌일 때, 몸 밖 세균을 몰아내는 일만큼 내 안의 면역력을 높이는 일이 긴요하다. 외면보다는 내면을 귀중하게 여겨 가꾸라는 말이다. 스스로 활짝 핀 얼과 함께 지내면, 고요함 속에 조금씩 자라나는 움을 볼 수 있겠다.

'생명의 노래'에는 무엇에도 견줄 수 없는 힘이 자라난다. 그런 소리를 흥얼거리며 가다보면, 즐겁고 기쁜 일이 생기지 않겠는가. 깊디 깊은 내 영혼에서 몹시 맑은 가락이 흘러나올 터이다. 그 소리는 인생을 굽히지 않고 새롭게 하는 정신이다.

왜 이런 얘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는가. 온갖 열매를 거두는 가을이 완연한 덕이다. 지난 여름이 유난히 무더워서일까.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 때가 정말 반갑다. 온 산에는 울긋불긋 단풍이 물들고, 코스모스 한들거리는 들판은 적적하다. 서늘한 가을밤은 등불을 가깝게 해서 글 읽기에 좋고,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을 찌우며….

가을을 맞으면 곳곳에서 삶을 끄집어내는 노래가 유독 많이 불려진다. "눈을 뜨기 힘든 가을보다 높은 저 하늘이 기분 좋아…", "가을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고…"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등 노랫말과 가락이 그윽한 음악이다. 한 인생을 놓고 보면, 이 때처럼 이야기하기 좋은 계절이 또 있을까. 아울러 오곡백과가 한창인 요즘이 어느 계절보다 풍성해서 좀체 가만히 놔두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차디찬 겨울의 문턱에서 부르는 곡조(曲調)는 더할 나위 없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그만큼 꽉 찬 풍요로움의 철을 아쉬워해서이다. 모두 떠날 채비를 서두르며 다음 삶을 준비한다.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다 하리오'라는 싯구처럼 내일의 희망을 안고서 말이다.

온누리가 황금들녘이다. 여기저기서 노오란 물결이 일렁인다. 가을 추(秋)는 햇볕(火)에 쬐여 고개 숙인 벼(禾)를 거두는 때를 일컫는다. 그런 수확의 계절 가을이 점점 무르익어 간다.
문득 '農夫餓死枕厥種子·농부아사침궐종자'라는 말이 떠오른다. 농부는 굶어 죽을지라도 그 종자를 베고 눕는다는 뜻이다. 농부는 씨앗을 목숨만큼 소중히 생각해 아무리 배가 고파 죽을지언정 앞으로 지을 농사를 위해 종자는 남겨둔다는 의미이다. 농부에게 씨앗은 매우 살뜰한 존재이다. 지금에 급급해 미래를 망쳐서는 안 된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앞날을 생각한다. 하나 어리석고 인색한 인간은 죽고 나면 온갖 재물도 소용이 없음을 모르며 산다.
이와 비슷한 속담도 전해온다. "가을 식은 밥이 봄 양식이다." 먹을것이 흔한 가을에는 먹지 않고 내놓은 식은 밥이 봄에 가서는 귀중한 양식이라는 뜻이다. 풍족할 때 함부로 낭비하지 않고 절약하면, 뒷날 궁핍함을 면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우리는 이 같은 격언처럼 지내고 있는가. 대개 고개를 가로 젓거나 머뭇머뭇거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은 자살률과 노인빈곤율, 날로 증가하는 젊은이들의 실업률, 인구절벽에 가까운 출산률 등 미래를 생각하면 아찔한 상황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정부와 자치단체 등에서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에게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
아이와 젊은이, 노인은 사회를 지탱하는 아주 밀접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 의미나 실체를 가볍게 여기거나 인정을 하지 않다간, 우리 사회는 '암흑' 속에 빠질 수도 있다. 짠하고 아리고 시린 이들의 어려움을 보고만 있어서야 되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만 살고 내일은 어떻게 살든 괜찮은 존재로 볼 수 없다. 미래의 희망이 다가올 때라야 두 손 불끈 쥐고 힘든 현실을 이겨낼 수 있음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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