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바닷길 항해, 海神이여 지켜주소서

 

▲ 인천 안목선착장인근 앞 바다에 전통방식을 이용한 그물이 설치 돼 있다(사진 오른쪽). 연평도 향토유적 1호인 충민사(사진왼쪽)에서는 과거 임 장군의 선견지명을 숭배해 풍어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인천일보 자료사진

 

▲ 중국 광저우에 있는 남해신묘에서 향을 피우고 소원을 비는 관람객의 모습.

 

▲ 산둥성 웨이하이 적산법화원에 위치한 신라왕자묘.
▲ 광저우박물관에 있는 마조의 동상.
▲ 광저우박물관에 있는 남해신 동상.
▲ 옌타이 성산두의 용왕 사당의 모습.

 

광저우 남해신묘 1400년 역사

남은 해신 묘중 가장 크고 완벽

푸젠성 마조·저장성 관음신앙
산둥성 용왕 … 관우도 추앙받아

한국 대표 해신은 용왕신·당신
개양할미·칡머리당·최영장군도

고기잡이 신 임경업 장군 신앙
연평도 중심 서해안 일대 퍼져
전쟁 명장 … 억울한 죽음 당해


고대로부터 바다로 나간다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다. 지금처럼 안전한 선박과 뛰어난 항해술이 없었기에 바다는 공포와 경외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허구적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바로 해신(海神)이다. 처음에는 고래나 뱀같은 동물들을 형상화했다.

이후 점차 이를 의인화했다. 특히 환황해 지역을 중심으로 수많은 해신들이 등장한다.

한국에는 용왕, 당신(堂神) 등이 있고, 중국에서는 남해신, 동해용왕, 마조 등이 대표적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바닷길에는 관음신앙이 급속히 퍼져나간다.

지금도 한중 해신의 으뜸은 관음이다.


#남해신과 마조, 그리고 용왕

중국은 고대 해상 교통로를 중심으로 지역별로 각기 다른 해신들을 만들어냈다. 산둥성 일대 동해용왕, 남부 광저우 일대의 남해신 축융, 중부지역인 취안저우의 통원왕, 푸젠성의 마조 등이 대표적이다.

광저우에는 중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해신의 묘가 있다.

광저우의 남해신묘는 파라묘라고 불리며 황포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에 위치해 있다.

594년에 만들어져 14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중국 고대 4대 해신묘 중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가장 규모가 큰, 가장 완벽한 것이다. 고대 해상 실크로드의 증거로 광저우가 고대로부터 해상교통의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규모도 상당하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남해신을 모신 사당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바다가 있었을 사당 정면에는 커다란 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날도 남해신묘를 찾은 많은 관람객들이 저마다 향불을 태우며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남해신 뿐만 아니라 다른 신들도 모셔져 있었다.

이곳에서 조금 북쪽 지역인 중국 푸젠성에는 지금도 마조신앙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푸젠성에서 마조신앙이 발전한 것은 해상 실크로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곳은 많은 항해자와 해외 이주자들을 배출한 지역이다.

화교(華僑)의 진출과 함께 마조 신앙도 동남아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지로 퍼져나가 각지에 마조의 사당이 건립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조 신앙이 유별난 곳이 대만이다. 대만에서 마조는 여러 신들 가운데서도 옥황상제만큼이나 인기가 높다. 그리고 일본 오키나와에도 마조의 사당이 있는데, 이는 섬이라는 지역적인 특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더 북쪽인 저장성 일대에서는 관음신앙이 대세다.

고대 무역항인 닝보 앞 바다에 중국 최대 관음성지인 보타도가 있기 때문이다. 관음신앙은 인도에서 시작해 동남아시아를 거쳐 광저우와 푸젠성을 거쳐 닝보에서 꽃을 피웠고, 바닷길을 따라 한국과 일본까지 급속히 확산됐다.

중국은 산둥성 일대에서는 용왕에 대한 믿음이 매우 강하다. 주요 사찰은 물론 유적지마다 용왕을 모시는 사당이 마련돼 있다. 이 밖에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는 재물신 뿐만 아니라 바닷가에서는 해신으로도 추앙받고 있다.

#용왕과 당신(堂神), 그리고 임경업 장군

한국의 대표적인 해신은 용왕신과 당신이다. 용왕은 한국의 모든 바닷가 마을에서 해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천과 부산 등에는 용왕을 모시는 용왕사가 있고, 바닷가 마을에서는 당신과 함께 빠지지 않고 용왕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있다.

마을을 지켜주는 당신은 해신의 역할도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해북부의 임경업 장군, 서해 중부의 개양할미, 남해 서부의 칡머리당, 남해 중부의 최영장군 등이다.

특히 서해안 황해도에서 전북에 이르는 경기만 지역에서는 임경업 장군 신앙이 전승되고 있다.

그는 조기잡이를 가르쳐 준 고기잡이의 신으로 특화되고 있고, 인천 연평도를 중심으로 서해안 일대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임경업 장군 신앙의 본거지는 연평도로 1960년대까지 조기잡이의 메카로서 해마다 전국의 어선들이 몰려들어 조업을 하고 파시가 섰다.

임경업(1594~1646)은 조선시대 실존 인물로 충신이자 전쟁의 명장으로 이름을 날렸으나 말년에 역적으로 몰려 죽은 인물이다.

당신이나 무속의 신 중에는 남이장군, 임경업장군, 최영장군 처럼 영웅적 활동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맞이한 사례가 많다. 중국도 비슷해 삼국지의 명장 관우가 대표적이다.

설화에 따르면 임경업장군이 병자호란 때 소현세자, 봉림대군을 구출하러 제물포를 출발해 산둥으로 향하던 중 선원들의 식수와 부식을 얻기 위해 연평도에 정박하게 된다.

이때 임장군은 조수 간만의차를 이용해 가시나무를 연평도 앞 바다에 꽂아 많은 고기를 잡았다. 주민들은 3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같은 방식으로 어업 중이다.

한국 해신의 또 하나의 특징은 배를 지키는 선신(船神)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선신은 배서낭으로 불린다. 배서낭은 배의 수호신이자 어로신이며 항해신이다. 그래서 항해의 안전과 선원의 무사 그리고 만선의 풍어를 기원하는 대상이 된다. 선원들은 배서낭의 도움으로 태풍과 풍파에도 무사할 수 있으며, 서낭의 울음소리로 길흉의 전조를 알 수 있다고 믿었다. 어민들은 배서낭의 영험에 따라 풍어가 되고 흉어가 된다고 여긴다.

▲인천일보 해상실크로드 탐사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il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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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건너 신(神)이 된 신라태자

풍랑서 살았지만 병사한 왕자 … 묘는 소원 비는 신앙처로

중국 해상실크로의 주요 도시를 다니면서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신라의 왕자가 이곳에서 신으로 모셔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곳이 중국 저장성 핑양현에 있는 신라태자관과 산둥성 적산법화원에 있는 신라왕자묘다.

지난 여름 핑양현의 한 도교사찰을 찾아갔다. 원래 있던 장소가 옮겨지면서 이곳저곳을 헤매다 겨우 산 중턱에 위치한 신라태자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 도교사찰에서는 신라태자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었다. 언제부터 이곳에 신라태자관이 있었을까

40년째 사찰을 관리하고 있는 임성귀(77) 도관은 중국 당나라 때부터 내려오고 있다며 자랑에 열심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500여년 전 나당연합군이 승리하면서 나당관계가 우호적인 시절, 중국과의 교류를 위해 신라왕이 태자를 사신으로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풍랑을 만나 배가 침몰했고, 태자는 돛대를 잡고 겨우 이곳으로 떠내려 와 사람들에 의해 구조됐다. 신라 태자는 얼마 살지 못하고 병사했고 죽은 후 그가 신라 태자임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은 이를 황제에게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이곳에 신라태자묘와 작은 사당을 지어 그의 넋을 위로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곳은 사람들이 소원을 빌면 잘 이뤄진다는 구복신앙처로 유명해졌다. 300년 전에는 규모가 큰 태자전이 들어서기도 했다.

임 도관에 따르면 원나라 황제가 직접 시호를 내리기도 했다고 한다. 1미터 길이의 나무에 위령현혁광우성왕(威靈顯赫廣佑聖王)이 적혀 있었는데 문화대혁명때 모두 부서져 사라졌다. 또 다른 신라왕자묘는 산둥성 위해시의 있는 해상왕 장보고를 모시는 사찰인 적산법화원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왕자의 묘위에는 비단을 두른 동상이 서 있다. 이곳도 마을 사람들의 구복기도처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