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분열'이 현대에 끼친 영향은?
▲ 찰스 오만 지음, 안유정 옮김, 필요한책, 260쪽, 1만5000원

중세는 우리에게 어떤 종류의 미래가 되어가고 있다. 재발견의 대상으로서의 중세는 서브컬처를 지배하는 키워드가 됐으며, 사회학적으로는 점점 신봉건주의화 되는 현대 문명을 경고하는 지표로도 논의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바탕에는 거듭되는 고고학적 발견과 전문 지식의 발전으로 보완되는 중세의 세부 영역들의 구체화 경향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인 찰스 오만 경은 그 중세 유럽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뤘던 선구적인 전문가 중 한 명으로, 특히 중세 유럽 전쟁사에 관하여 지금도 참고문헌으로 활용되는 책들을 지은 최고 권위자다. 윈체스터 칼리지와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수학한 찰스 오만은 옥스퍼드 대학교 현대역사학과 교수, 왕립역사협회와 왕립화폐협회 및 왕립고고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한 1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했으며, 화려한 경력과 연구의 성과를 증명하듯 1920년에 기사 작위를 받았다.

그런면에서 연대기 저자들이 남긴 단편적이고 왜곡된 이야기들로부터 중세 전쟁을 재구성한 찰스 오만의 작업은 선구적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기민한 분석과 극적인 서사가 매력적으로 혼합된 작법을 구사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스타일은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이 책에서 로마 제국이 분열되기 시작한 378년부터 르네상스 직전인 1515년까지의 시간 동안 일어난 중세 유럽의 중요한 전쟁들을 고찰함으로써 큰 틀에서 중세 전쟁의 양상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살펴본다.

저자는 우선 로마 제국의 분열이 중세 유럽 역사에 미친 심대한 영향력에 주목한다. 이어 무기와 전술·전략 변화에 관한 자료적 증거들을 바탕 삼아 냉소적이고 풍자적인 어조로 유럽 전쟁의 변화상을 큼직큼직하게 서술하고 있다. 오롯이 전쟁 자체가 가진 역사의 흐름에 맞춘 그의 관점은 일반적인 역사서와는 다소 색다른 지점들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그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나오는 오류들을 지적하고 현제(賢帝) 레온이 쓴 책 <탁티카>에 기반하여 비잔티움 제국의 군사 시스템을 분석한다. 그 과정을 통해 그는 그간 과소평가됐던 세계사 안에서의 제국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복권시킨다.

그러면서도 그는 비밀 병기로 이름 높은 비잔티움의 '그리스의 불'을 단칼에 가치 절하한다. 왜냐하면 제국이 구축한 군사 시스템의 정교함과 비교하면 '그리스의 불' 같은 특수한 병기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러한 찰스 오만의 결론들은 여러 모로 논의되고 숙고될 화두들을 던져 준다.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통찰력이 고고학적 성과가 드러나기 시작한 근간의 중세사 연구에도 여전히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며, 이것이야말로 전쟁사가들로 하여금 찰스 오만의 책을 읽게 만드는 이유다. 찰스 오만이 여기서 보여준 내용들은 상당수가 사료적 근거와 함께 역사적 정설이 되어 통용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가지는 공인된 클래식으로서의 입지를 증명하는 부분이지만, 동시에 중세의 재발견과 함께 계속 논의되어야 할 지점들이 여전히 보인다는 점에서 현재성 또한 갖고 있다. 이 책은 중세 유럽의 또 다른 창을 열어 보임으로써 그 안을 통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만드는 독서 경험이 될 것이다.

/여승철기자 yeopo99@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