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장

1946년 4월1일 인천시립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광복 후 국립박물관에 뒤를 이어 두 번째로 개관한 박물관이자 최초의 공립박물관이었다. 박물관이 들어선 건물은 지금 자유공원

 

맥아더동상 자리에 1890년쯤 지은 독일계 무역상사 세창양행 직원 숙소로 광복 때까지 일제에 의해 인천향토관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연면적 173평에 9개 방으로 이뤄진 유서 깊은 건물이지만, 숙소로 지어진 탓에 전시관으로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박물관이 자리를 잡아갈 무렵 6·25전쟁이 터졌다. 다행히 유물은 안전한 장소로 옮겨 보관했지만, 인천상륙작전 포화로 박물관 건물이 소실되었다. 불에 탄 박물관 아래 제물포구락부를 이전 장소로 정하고 준비에 들어간 시립박물관은 1953년 4월 이곳에서 다시 문을 열었다. 이 건물 역시 1901년 각국조계에 살던 외국인의 사교클럽으로 지어져 첫 박물관만큼이나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총 면적이 116평에 불과해 박물관으로 쓰기에 비좁을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서만 30년 넘는 세월을 보낸 박물관은 '88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옥련동 청량산 기슭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1987년 12월 설계를 마치고 신축공사에 들어간 시립박물관은 2년여의 공사기간을 거쳐 1990년 5월 이전을 마무리했다. 온전히 박물관으로 지은 건물을 사용하는 것은 개관 이래 처음이었다. 근 반세기 만에 제대로 된 박물관 건물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는 준비 과정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계획 단계부터 전문 인력이 참여하여 소장 유물 특성에 맞게 전시장을 구성하고 박물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시설을 제시했어야 하며, 그에 따라 최적의 부지와 적정한 규모를 확정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해야만 했다. 새로 지을 박물관의 틀을 잡아가야 할 전문 인력이 채용된 것은 신축 공사가 절반 이상 진행된 후로, 이미 건물 골조가 세워진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더욱이 그에게 주어진 일은 박물관 건립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이전에 관한 업무였다.
그렇게 지은 박물관이 제대로 운영될 리 없었다. 박물관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할 시설이 너무 부족했다. 항온·항습이 전혀 안 되는 수장고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장마철이면 진열장 벽을 타고 빗물이 흘러들었다.
별도의 특별전시실이 없어 3층 서화전시장을 통째로 비우고 기획전시를 열어야 했다. 이 탓에 그 곳에 걸려 있던 그림과 글씨는 1년에 한두 번씩 수장고를 오르내리는 고초를 겪었다. 그뿐이랴. 명색이 사회교육 인증기관이었지만, 교육장이 없어 옆 동네 상륙작전기념관 강당을 빌려 써야 했다. 박물관이 앉은 자리는 왜 그리 높고 가파른지, 정류장에서 박물관에 이르는 길은 등산로와 다를 바 없었다. 버스노선도 많지 않아 차라리 택시를 이용하는 관람객도 많았다.

2006년 리모델링 공사를 통해 강당 등 부족한 시설은 어느 정도 갖추었지만, 좁은 부지와 접근이 불편한 장소성은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이전에 비해 다양하고 수준 높은 전시회와 각종 행사를 열어도 관람객은 좀처럼 늘어나지 않고 있다. 박물관이 갖는 태생적 한계, 비좁은 면적과 불편한 접근성 때문이다. 애초에 박물관 건물을 제대로 짓지 못한 탓이리라.
지난 2016년 동양제철화학 학익동 공장부지 1만5000평에 시립박물관을 이전하고, 시립미술관과 문화산업시설, 예술 공원을 건립하는 '인천뮤지엄파크 조성계획'이 확정되었다.

박물관이 당면한 문제와 지역 미술계의 숙원사업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계획이지만, 시작 단계부터 일부에서 불거진 부정적인 여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어찌되었건 현재 타당성 조사용역을 수행 중이며, 조만간 그 결과가 나올 예정이라니 지켜봐야 하겠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반드시 짚고 가야 할 것은 타당성 조사용역 최종보고서에 전문가 집단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었는지 여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지금이라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다양한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수렴하여 결과에 반영해야 한다. 아울러 뮤지엄파크 건립을 추진할 조직과 인력, 그 중에서도 전문 인력을 언제·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계획도 갖고 있어야 한다. 또 다시 지금과 같은 박물관 건물을 짓는 우를 범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박물관을 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