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영 문화체육부 차장

 

 

'유쾌한 소통, 아름다운 재단'. 이를 표방하는 곳은 어딜까. 혹시 인천문화재단이 아닐까.
요즘 인천에서 활동하는 30대 예술가를 만날 기회가 잦다. 그들의 이야기는 담백하고 꾸밈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예술을 향한 열정은 뜨겁고 삶의 고민은 깊다.
왜, 예술의 길은 버겁고 가시밭길이어야 하는가. 소위 "예술이 밥 먹여주냐"라는 1차원적 물음에 무릎을 꿇고 싶은 때가 많다고 이들은 전한다.
'나와 너'를 문화로 잇는 활동가는 공간과 인식 부족 벽에 부딪혀 늘 외롭다. '미적 활동'에는 경계가 없다는 일념에 다양한 예술 활동을 하며, 미술가로 불리길 바라는 한 작가는 대중과 소통하는 법에 늘 버벅거린다. 조각칼에 의지해 외롭게 캔버스에 '상처'를 입히는 작업에 열중인 그 또한 '내 작업'을, '내 작품'을 알아주길 원한다.

평생의 업으로 예술을 정했지만, 막막한 생계를 잇기 위해 손을 놓을 때가 다반사다. 돈이 모이면 다시 예술 활동을 시작한다. 그래서 30대 예술가들은 삶과 예술을 대하는 자세를 진지하게 할 수밖에 없다. 숙명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그들과 만남의 끝은 한결같다. "그런데 언제까지 인천에서 예술 활동을 해야 하나요."
지금 인천에선 시립미술관을 짓고, 송도국제도시에 아트센터 개관 준비가 끝났다. 재정난을 이겨낸 후에는 1000개 문화 오아시스 활동으로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하지만 30대 예술가들이 설 자리는 별로 없다. 그들은 "인천에서 젊은 예술가가 몇이나 되겠어요. 그마저 없으면 인천 미술의 내일이 있을까요."라며 날선 물음을 내뱉는다.
이 푸념을 들을 때마다 몇년이라도 더 인천에 살았던 기자가 미안하다. 뭐가 문제일까. 묻고 찾고 따지지만 기자 역시 답을 알지 못하기에, 지금도 '형이상학적' 답변과 단어들로 기사를 채우고 글을 엮고 있다.
유쾌한 소통은 형식보다는 내용을 쫓고, 권위보다는 실험 정신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이다. 인천문화재단이 언급한 '아름다운 재단'이란 단어는 재단이 언급하는 게 아닌, 시민과 예술가들이 스스럼없이 말해야 한다. 30대 예술가들은 인천시와 문화재단에 거창한 걸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제발 시민과 소통할 수 있고 많이 만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달라"고 외친다.
며칠 전 만났던 한 예술가의 한숨이 귓가를 떠나지 않는다. "추석이 다가오네요.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라도 집에 가야죠. 생계 유지를 위해서는 별 수 없어요. 올해는 꼭 작품을 한 개라도 팔아 부모님께 떳떳한 예술가가 됐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