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권력의 횡포에 딴죽걸기
▲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 스틸컷. /사진제공=영화공간주안

▲ 감독와의 대화 장면.

문화와 권력은 본질이 다르다. 그러나 자신을 지배자로 칭하는 자는 태생이 다른 두 매개를 끊임없이 잇는다. 그리고 문화는 권력의 시녀가, 권력은 문화를 등에 업고 지배자의 통치 선전(프로파간다) 도구로 이용한다.

우린 알고 있다. 문화는 권력의 횡포를 깨뜨릴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알찬 방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기에 한줌의 권력이라도 잡고자 하는 자들은 끊임없이 문화를 나누고, 갈라 놓고, 줄을 세운다.

'안나, 평양에서 영화를 배우다'(AIM HIGH IN CREATION!, 2013)는 특이하다.

영화를 만든 다큐멘터리 감독인 호주인 안나 브로이노스키는 다국적 기업에 맞서 시드니 환경을 지키기 위해 최상의 방법을 찾는다. 북한의 선전영화를 통해 '직접적'으로 환경 파괴의 문제를 알리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몇 해 전 북한의 평양에 다녀온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한 권의 책이 안나를 북한으로 이끌었다.

바로 1987년 북한의 김정일이 쓴 '영화와 연출'이다. 안나는 다국적 기업이 노리는 탄층 가스야말로 자본주의 최악의 사례이고, 돈에 눈이 먼 다국적 기업은 김정일 선전영화에 등장하는 완벽한 적으로 여긴다. '영화를 통해 주민들을 효과적으로 선동하겠다'는 안나의 생각은 북한식 선전영화와 상통한다.

영화는 안나가 북한에 머물렀던 21일간의 시선과 선전영화 지침에 따라 만든 환경 단편극영화
'가드너(Gardener, 정원사)'의 제작 과정을 평양과 시드니를 교차로 비춘다. 이 영화를 통해 그 동안 접할 수 없던 북한의 조선인민군 4·25 예술영화촬영소를 비롯해 김정일이 가장 총애했다고 소개한 북한 영화계의 원로 박정주 감독과 북한의 올리버 스톤으로 표현된 리관암 감독의 연기 지도와 조언, 북한의 유명 배우 윤수경과 배용삼 작곡가, 리희찬 각본가는 물론 피바다 가극단의 공연, 영화 중간 중간에 비치는 북의 선전 영화까지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영화 저변에 깔린 서구인의 우월적 시각은 영화와 다큐멘터리라는 굴레를 이용해 북한을 희화화 시킨 듯 하다. 영화 관람 후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이유는, 서구인은 알지 못하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분단 70년의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일터다.

'조롱'처럼 느껴질 수 있는 영화 내용과 안나의 대사, 박정주 감독의 상처 입은 "우리는 뭐 달나라에서 살고 있나"라는 푸념.

영화 공간 주안에서 지난 15일 열린 황진미의 시네마 게이트에서, 황진미는 "처음에는 북한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꼈지만 북한 사회에 대한 정당한 비판도 느꼈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안나 감독은 "초반 5분 서양 사람에게 흥미를 주기 위해 만들었다"며 "서양인의 시각으로 프로파간다라고 한 것이지 북에서는 이 영화를 프로파간다라고 하지 않는다. 영화는 영화이다"라고 답했다. 제5차 남북정상회담을 하루 앞두고, 이 영화는 생각을 많게 한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