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시·도 예산 챙기고
정책위의장 인사권 행사도
홍영표 "협상 기계가 된 듯"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당·정·청 관계의 균형추 역할을 자임하면서 광폭 행보에 나서 당의 '투톱' 중 한 명인 홍영표 원내대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지난 7일부터 전남, 세종, 충남, 경기에 이어 12일 경남·부산까지 전국 시·도청을 방문,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를 두고 통상 시·도 예산정책협의회나 예산 당정은 원내대표가 주도해 왔으나, 당 대표가 시·도 예산까지 직접 챙기면서 원내사령탑인 홍 원내대표의 역할이 무색해지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5일 문희상 국회의장 주재 회동을 통해 여야 대표들과의 '초월회' 결성과 회동 정례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이를 두고 한 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은 당대표가 아닌 원내대표들과 입법 등 현안을 논의해야"라고 볼멘소리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당으로서 당정 간 원활한 정책협의와 원내 협상을 위해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을 러닝메이트로 선출해야 한다는 당내 논의도 금세 유야무야 됐다.

이 대표는 취임 일성으로 정책위의장의 유임을 깜짝 발표했고, 이후 러닝메이트제 도입에 대한 일부 요구는 "원내대표 선거 승리를 위한 안배 인사보다 당대표의 적임자 지명이 낫다"는 명분으로 사그라들었다.

정책위의장과 정조위원장까지 사실상 이 대표 휘하로 들어가면서 홍 원내대표가 '장악력'을 강화할 기회를 놓친 모양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홍 원내대표가 야당과의 예산·입법 전쟁에서 손에 쥘 수 있는 협상 카드도 비교적 제한적이라는 것이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한 중진 의원은 "홍 원내대표가 '내가 협상 기계가 된 것 같다'고 했다"며 "실탄 없이 야당과의 협상에 내몰리는 상황에 대해 답답함을 토로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전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홍 원내대표가 이 대표에게 일부러 더 힘을 싣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홍 원내대표가 이번 정기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본인이 하지 않고 이 대표에게 '삼고초려'로 부탁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는 해석이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구심력 강화 차원에서 원내대표가 당대표에게 힘을 실어주는 측면이 있다"며 "두 분이 역할분담을 하면서 우선은 당 중심으로 가고, 정기국회가 무르익으면 또 원내대표의 존재감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우 기자 jesus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