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호 언론인

 

국방의무는 헌법 제39조로 규정돼있다. 모든 국민은 관련 법률에 따라 그 의무를 다 해야 한다. 필자의 30여개월 병역복무 역시 이에 따른 거다. 당시 '국방의무'라는 낱말 앞에는 '신성한'이란 형용사가 붙었다.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거룩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필자는 군 복무 중 단 1초도 그런 생각 든 적 없다. 징병검사도 생략된 채 갑자기 끌려간 군대는 지옥이었고, 일상은 노예의 시간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 지났어도 찬바람 일렁이면 공포에 휩싸이는 건 당시 입은 정신적 상해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런 군대, 요즘 많이 좋아졌다는 얘길 종종 듣는다. 만연했던 구타나 얼차려도 줄었고, 의식주 모든 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한다. 좋은 현상이겠지만 세월 지났는데도 안 바뀌었다면 그게 비정상일 터, 그리 자랑 할 일은 아닐 거다.
게다가 "군대 좋아졌다"며 들이대는 것 대부분은 부수적인 것들이다. 달리 말하면 본질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는 얘기다. 구멍 숭숭 뚫려 누더기가 된 징병제도가 그렇고, 머릿수가 곧 국방력이라는 헛된 믿음이 그렇다.

먼저 징병제를 보자면 가장 핵심적인 공정성은 물론이고 효율성도 전혀 없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체육인이나 연예인 병역면제 특혜조차 그때그때 달라져 신뢰를 잃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손흥민의 천문학적 몸값을 걱정하는 서민들의 모습이 낯설다. 돈과 권력이 징병제에 끼어든 점도 제고의 신뢰성을 무너뜨렸다. 상류층 자식들과 '보통사람' 자식들의 병역 면제비율이 7~30배 차이가 난다는 조사대로라면 현행 징병제는 사망선고를 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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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역시 논란이 된 병역면제 특혜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제도정비에 나섰다. 쓸 수 있는 카드가 많지 않으니 크게 기대할 건 없어 보인다. 따라서 차제에 징병제의 본질적 문제에 천착해야 할 것이다. 그 방향은 단순한 머릿수 늘리기가 아닌 비록 소수일지라도 정예화다. 아울러 91%에 이르는 높은 판정률도 낮춰야 한다. 이 수치는 2차 대전 당시 미군의 현역 판정률(60%) 및 태평양 전쟁 말기 '1억 총옥쇄'를 내건 일본군의 징병률(80%)보다 높은 수치다. 한마디로 오늘날 한국은 중증장애인이나 고질적 만성질환자가 아니고서는 거의 모두 징집된다고 봐야 할 텐데, 이래도 좋은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