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 논설실장

8월이 저물고 9월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온다. 8월은 일본이 패망하고 이 민족이 해방된 달이다. 위안부 등의 아픔과 꿈에도 그리던 광복의 기쁨이 교차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해 8월은 그 감격에 대한 해석마저 분열돼 앞으로가 더 걱정이게 했다.

▶8월 15일 한 쪽에서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건국인지, 정부수립인지의 70돌 맞이 행사를 벌였다. 그 반대편에서는 내년에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 행사를 대대적으로 연다고들 한다. 지난 광복절 문재인 대통령은 단 한 차례 '광복 73주년이자 정부수립 70주년'이라고만 언급했다. 이른바 1919년이냐 1948년이냐의 대결이다. 한 켠에서는 김구냐, 이승만이냐로 갈라치기에 나섰다고도 한다.

▶도데체 1919와 1948이 편갈라 싸울 일인가. 생업에 바쁜 소시민들은 참 뜬금없어 한다. 국민 대다수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전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이고 후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는 걸. 1919는 사정이 안 돼 임시로 정부를 세웠고 1948은 당당하게 해방된 나라를 세운 것이다.

▶나라도 못 지켜 우리 누이와 딸들을 위안부로 끌려가게 한 게 조선왕조다. 조선의 지도층은 온갖 당파를 지어 피 터지게 싸웠다. 왕의 첩이 죽으면 1년상이냐, 3년상이냐를 놓고도 3족을 멸하는 사화(士禍)를 벌였다. 노론인지 소론인지, 시파인지 벽파인지, 이제는 알고도 싶지 않은 무리들이 선비입네 했다. 백성들만 도륙을 당한 임진왜란을 겪고서도 300년간 변할 줄을 몰랐다.

▶지난 12일 인천 문학구장에서는 경기에 앞서 '위안부 기림일' 행사가 열렸다. 주제는 '그녀들의 8월 14일이 아닌, 우리의 8월 14일로'였다. 인천의 한 고교생들은 '종이로 만든 평화의 소녀상'을 시민들에게 나눠 줬다고 한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일본의 만행이다. 독일과 달리 그들은 아직 제대로 된 사죄도 없다. 그래도 우리는 숙명처럼 좁은 해협 건너에 그런 이웃나라를 두고 살아가야 한다.

▶백범 김구는 해방된 조국에 오자마자 자강불식(自强不息)을 강조했다. '동포들이여, 또 한번 역사의 패배자가 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마음을 굳세게 다지며 쉬지 않고 노력해야 한다'고. 위안부 기림일에 슬퍼하고 분노하되, 후세들에게는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 보물선 돈스코이호의 교훈도 그런 것이다. 113년 전 일본해군은 제 맘대로 진해만을 기지로, 울릉도를 전쟁터로 삼았다. 그 날 흰 옷 입은 울릉도 사람들은 천둥같은 함포사격에 얼마나 혼이 빠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