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준 정경부 기자

 

이화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인천 출신 '김활란'은 오늘날 친일파의 대명사처럼 됐다. 일제 강점기 시대 여성 지식인이었으나, 상류층 여성들과 함께 애국금차회를 조직하고 금비녀와 금가락지를 뽑아 일제의 국방비로 헌납하는 운동을 벌이는 등 친일 행각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각종 친일단체 임원직을 맡으며 일본 제국의 한민족 말살 정책인 신사참배에 협력하고, 징병을 권유하는 강연에도 앞장섰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그야말로 뼛속까지 친일파다.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김활란의 이름이 포함됐다.

그 어느 지역보다 인천시민들은 인천 출신인 김활란을 기억하고, 그가 남긴 행적을 용서하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인천시는 그를 치켜세웠다.
2013년 10월 김활란을 '인천을 빛낸 여성'으로 선정하고 관련 내용을 시 홈페이지에 게시해 그의 업적을 널리 칭송했다. 김활란 칭송 글은 8월 15일 제73주년 광복절 직전까지 올라 수많은 누리꾼이 김활란을 인천을 대표하는 인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시는 또 홈페이지의 '인천의 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에도 김활란의 이름을 올렸다. 모두 411명을 선정한 이 명단에는 또 다른 친일반민족행위자인 어진 화가(임금의 초상화가) 김은호도 포함돼 있었다.
인천일보가 취재에 나서자 시는 곧바로 문제의 글을 삭제했다. 결국 2013년부터 지금까지 5년간 시 내부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한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뜻인데, 공직자들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실감하게 한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역사는 분명 과거의 일이지만 이를 왜곡하거나 잘못 알고 있다면 행정 불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더 나아가 인천의 정체성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남춘 인천시장은 광복절을 맞아 이달 15일 미추홀구에 거주하는 고(故) 홍창흠 애국지사의 딸 홍순옥씨 자택을 찾았다. 홍창흠 애국지사는 민족정신을 강조하고 독립자금을 모금하는 흠치교 8인조에 가입해 활동하며 독립자금으로 50원을 납부한 협의로 체포돼 1년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고 한다.
박 시장은 이날 대문에 독립 유공자의 집을 알리는 명패를 달며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에 감사와 존경을 표했다. 이런 박 시장의 행동으로 수많은 사람이 홍창흠 애국지사를 알게 됐다. 역사는 이렇게 작은 것부터 올바로 실천했을 때 바로 세워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