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베이징·만주서 독립운동대가댁 옷 지어주며 생계 꾸려가

 

▲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 아내 이은숙 여사. /사진제공=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생불여사(生不如死)란 말은 우리에게 한 말인 듯 하도다. 이만큼 힘들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면 다른 고난이 닥쳐왔다."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천한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1867~1932)의 아내 이은숙 여사(1889∼1979)가 제73주년 광복절 행사에서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된다. 1962년 이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이후 56년 만이자, 이 여사 서거 39년 만이다.

광복절에 '독립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이 여사는 만주를 거점으로 한 평생 독립운동을 지원했으나, 그동안 독립유공자로는 인정받지 못했다.

이 여사는 남편보다 반백년이 넘는 세월이 흘러서야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게 됐다.

그가 서간도로 가기 직전의 삶부터 한국 전쟁 때까지의 경험을 담은 자전적 회고록 <서간도 시종기> 는 보잘 것 없었던 독립운동가 가족으로서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7년 만에 탈고한 회고록 육필본을 통해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뒤 여성으로서 가정을 지켜내기 위해 살았던 곤궁했던 삶이 조명받고 있다.

1889년 충남 공주 출생인 이 여사는 외동딸로 태어났다. 20살이 되던 1908년에 우당 이회영 선생의 재취부인으로 혼인했다. 당시 명문 사대부가 혼례로는 드물게 상동교회에서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이 여사는 우당과 결혼한 지 2년 만인 1910년 12월, 압록강을 건너 일가식솔들과 만주 서간도로 이주했다. 본격적인 해외 독립운동 근거지를 마련하기 위해 우당을 따라 떠난 길이었다.

1919년 고종 인산(因山) 이후, 그는 자식들과 서울을 떠나 베이징에 거처를 마련했다. 이 선생은 당시 베이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임시정부 수립에 조금 간여했으나 뜻이 맞지 않아 임시정부 활동을 포기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상황이었다.

이 여사는 베이징 시절을 곤궁하기 이를 데 없었다고 전한다. 그는 이 시기, 하루에 한 끼를 먹기 어려웠고 한 달에 절반은 절화(絶火, 밥을 짓기 위한 불을 피우지 못함)상태로, 생불여사(生不如死, 살아 있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함)인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1925년 임신한 몸으로 홀로 귀국한 그는 생활비라도 마련해볼 생각으로, 친척집 대소사에서 허드렛일을 해주고 삯바느질을 해가면서 어렵게 돈을 마련해, 베이징에 부치곤 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매일 빨래하고 만져서 주야로 옷을 지어도 한 달 수입이란 겨우 20원 가량 되니, 그도 받으면 그 시로 부쳤다. 매달 한 번씩은 무슨 돈이라는 건 말 아니 하고 보내 드리는데, 우당장께서는 무슨 돈인 줄도 모르시면서 받아쓰시니, 우리 시누님하고 웃으며 지냈으나 이렇게 해서라도 보내 드리게 되는 것만 나로서는 다행일 뿐이다"고 전했다.

우당 등 여섯 형제가 모든 가산을 처분하고 만주로 옮겨 와 독립운동을 했다. 당시 처분한 돈으로 우당이 주도해 세운 신흥무관학교는 청산리전투를 비롯한 독립운동의 주축이었다.

그 많던 재산을 독립운동에 다 바친 뒤 대가댁 마님들의 옷을 지어주면서 생계를 꾸리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한 일은 곧 그의 삶이었다.

1932년 11월17일 이회영 선생이 순국했을 때, 이 여사는 "신선 같은 풍채를 한 이회영을 뵈었다"고 회고록에 전하고 있다. 이후 독립운동을 하던 아들 규창이 투옥되자 그는 옥바라지를 하다 신경으로 이주했고, 1946년 길림성을 떠나 서울로 귀환했다.

이 여사는 1979년 12월11일 91세로 별세했다. 우당 이회영 선생은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낸 이시영의 형이다. 해공 신익희와는 사돈 간이며, 전 국정원장 이종찬, 이종걸 의원은 그의 손자이다.

한편, 사단법인 대한민국역사문화원은 여성 독립운동가 202명을 새로 발굴했다. 결혼과 동시에 독립운동의 기반이었던 삶을 살아낸 이 여사를 포함했다.

15일 열리는 '제73주년 광복절 및 정부 수립 70주년 경축행사'에서는 독립유공자 177명이 정부 포상을 받는다. 포상자 중 여성 독립운동가는 이 여사를 포함해 26명이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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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이종걸 의원 "여성 독립운동가 재조명 기회됐으면"

영구 이은숙 여사의 손자인 이종걸(민주당·안양 만안구) 국회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어린 손주와 놀아주시다가 틈틈이 쓰셨던 글이 할머니가 86세 되시던 1974년에 펴내신 <서간도 시종기>라는 자서전이었다.

독립운동을 증언하는 귀중한 자료가 저와 할머니 사이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 신기했다"며 "(이번 추서는)여성이었기에 더 엄혹한 삶을 살았지만 잊혀진 여성 독립운동가가 더 많이 알려지고 재조명되는데 관심을 기울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상아 기자 asa8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