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노동자 합숙소
부평구 박물관건립 중단
"사업비·주민반대로 곤란"
▲ 인천 부평구 '미쓰비시' 줄사택은 일제강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강제동원 흔적을 간직한 국내 유일한 곳으로 꼽힌다. 사진은 14일 오후 미쓰비시 줄사택의 모습.


"일천구백사십오년 팔월십오일. 정오. (중략) 부평평야에 풍덩 주저앉은 이 군수공장은…압박과 착취의 고역을 계속시키고 있었던 것이다."(소설 <해방공장>, 이규원)

일제강점기 전범기업 '미쓰비시(三菱·삼릉)'의 강제동원 흔적을 간직한 국내 유일한 곳으로 꼽히는 인천 부평 미쓰비시 공장 사택이 하나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부평구는 줄사택 일부를 보존해 박물관으로 만들려던 계획을 접었다.

부평구는 미쓰비시 줄사택 생활사 마을박물관 조성 사업을 전면 재검토한다고 14일 밝혔다.

구는 지난해 말 부평2동에 남은 미쓰비시 줄사택 일부를 매입해 생활사 마을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역사 현장을 보존하고,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기억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였다.

구는 8개 필지를 매입해 올 하반기 328㎡ 규모의 박물관을 조성하려고 했지만, 예산 확보 문제와 주민 반대에 가로막혔다. 부지 매입과 건축에 들어가는 사업비는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22억원에 달했다. 지난 6월25일 주민설명회에선 "낙후 동네 이미지가 더욱 강해진다", "박물관보다 주민을 위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구 관계자는 "줄사택을 활용한 생활사 박물관 건립은 어려워진 상황"이라며 "부평공원이나 향후 반환될 미군기지에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역사로 확장한 개념의 박물관 건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1930년대 후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계 기계제작회사였던 '히로나카 상공'을 1942년 미쓰비시중공업이 인수하면서 부평공장은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로 바뀌었다. 연립주택 형태로 줄지어 늘어선 줄사택은 공장 노동자들의 합숙소로 쓰였다.

87채가 남아 있던 줄사택은 지난해 말 취약지역 생활여건을 개선하는 '새뜰마을' 사업으로 17채가 철거되고 70채로 줄었다. 나머지도 부평2동 행정복지센터 신축과 주차장 조성 등으로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구가 생활사 박물관 건립을 추진했던 일부만이 철거 계획에서 비껴난 상태다. 개발과 보존의 가치가 충돌하는 셈이다.

김정아 부평역사박물관 총괄팀장은 "미쓰비시 사택은 한반도에 유일하게 남은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흔적"이라고 말했다.

/글·사진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