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종 인하대 일본언어문화학과교수

 

천재지변적 폭염에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했다. 하지만 완화가 아니라 폐지함이 옳을 것 같다. 전력공급이 여의치 않던 시대에는 전기사용을 자제시켜야 했다. 어느 가정에서나 사용해야 하는 전기인데 공급이 충분치 않으니 적정량 이상의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그러니 전기를 많이 쓰면 누진제라도 적용하여 높은 비용을 부담시켜야만 수요를 조절할 수 있었다. 사실 변변한 가전제품도 없던 시절에는 전기가 그렇게 많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어서 절약을 하고 말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언제적 이야기더냐? 예전에 비해 전기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현격히 증가하여 전기 없는 생활은 상상도 할 수 없고, 원전뿐 아니라 태양광발전 등 전기를 생산하는 기술도 급속도로 발전했다. 컴퓨터와 휴대전화 등 모든 소통수단이 전기의 상시 사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 집에서건 직장에서건 전기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시대이다. 기름이나 가스도 전기로 대체되고 있고, 자동차마저 전기차가 대세를 이룰 듯하다.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로 있는 자나 없는 자 모두 공기청정기나 에어컨을 달고 살아야 하는 일상이다. 그런데 지구 환경파괴와 이를 극복하려는 과학의 발전은 향후 더 많은 전기사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미 전기는 절약만을 강요받기 어려운 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력공급이 부족하고 가전제품이 사치품과 같았던 시절에 통용되던 누진제와 같은 정책을 고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

전력을 생산하여 공급하는 일은 국민을 호흡하게 하는 것과 다름없는데, 전기에 과한 사용료를 부담하게 하는 것은 호흡에 공기세를 물리는 것과 같다.
이제는 전기를 값싸게 공급해야만 우리 일상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대이다. 이미 전기는 만드는데 위험이 따르거나 비용이 든다고 하여 사용을 줄일 수 있는 소비재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국민이 필요한 전기를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시대적 요구로, 전기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한다면 전기사용이 일상인 현 시대의 정부로는 낙제인 셈이다. 전기세 누진제 유지는 전기 하나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여 국민 생활을 옥죄게 하는 무능한 정부로 남아 있겠다는 선언이다.
필요한 전기사용을 어렵게 만드는 누진제는 폐지해야 한다. 전기를 많이 쓰면 악이고 적게 쓰면 선인 시대는 지났다.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나 지원 등의 정책은 별도로 하더라도, 일반가정용 전기사용료 체계는 사용량에 관계없이 단일화하여 사용자 모두 공평하게 부담하는 선에서 수립돼야 한다. 같은 사과는 같은 값에 사 먹으면 되는 것이다. 전기도 하나를 쓰든 둘을 쓰든 가격차를 둘 만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
부의 양극화로 인한 빈부의 차가 큰 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많은 국민이 서로 비슷한 경제적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난한 자는 못 먹고 가진 자는 너무 많이 먹어 문제가 있다는 단순 이분법적 사고를 견지하고 있다.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자는 선택을 받은 자들이니 전기세를 많이 물려 응징해야 한다는 발상은 국민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면 결국 모두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과다한 전기세 부담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가정이 많은 전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전기세 누진제는 결국 중산층 가정에도 가난한 가정에는 더 많이,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경제적 고통을 주는 제도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주변에 절약해도 될 전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목격되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전기사용의 낭비를 막는 대책은 다각도로 강구되어 엄격히 시행해야 한다.
절약의 소중한 가치를 깨달아 절약이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하는 교육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모든 것이 인간의 의식에 달려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기업인 한전도 이윤을 추구해야 하겠지만, 징세와도 같은 구조에서 벌어들이는 수익만큼은 적정수준을 유지함이 옳다. 전기요금으로부터 올리는 수익이 과해서는 안 된다. 한전은 불편 없는 국민의 전기사용에 기여한다는 공익적 가치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 국민의 기업이어야 할 것이다.

쌀밥 한 끼 배불리 먹는 것이 소원이던 시절이 있었다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쌀 소비를 너무 안 해서 걱정인 시대이다. 전기도 남아돌아 제발 좀 사용해 달라고 해야 할 시대가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