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년 방치된 폐수처리시설
2015년 문광부 재생사업 선정
근로자·주민 여가공간 재탄생
캘리그라피 특강 등 프로그램
'바람- 온새미로' 등 전시회 유치
"영화세트장·박물관 같아" 발길

▲ 이윤숙 작가의 '바람-온새미로' 전을 보며, 직접 체험을 하고 있는 관객들

▲ 전시실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곳이 폐수 처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저장탱크.

▲ 십자가 영상을 빔프로젝트로 상영하고 있는 작품.고색뉴지엄 전시실 입구에서 전시내용을 보고 있는 관람객

▲ 십자가 영상을 빔프로젝트로 상영하고 있는 작품.

▲  고색뉴지엄 전경

큰 화물차량과 공장들이 줄지어 있는 권선구 고색동의 한 산업단지. 그중 눈에 띄는 건물이 있다.

주변 풍경과 다른 느낌을 풍기며 꼿꼿이 서 있는 이 건물. 쓸쓸히 묵묵하게 그 자리만 지키고 있던 이 건물에는 10여 년 동안 사람 발길이 닿지 않았다. 다시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한 것은 불과 1년밖에 안됐다.

새로운 단장을 마친 이곳은 '고색뉴지엄'이라는 이름을 얻고, 시민들을 향해 문을 활짝 열어뒀다.

이곳에서는 도심에서 느끼지 못하는 여유와 문화생활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적한 오후에 부담 없이 찾아올 수 있는 이곳은 폐수처리장에서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산업단지와 공존을 꿈꾸는 복합문화 공간 고색뉴지엄의 면면을 살펴본다.

#산업단지에 문화예술 꽃피우다
10년 전 폐수처리 기능을 하던 곳이 지금은 산업단지 내 근로자들과 근처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활동 기회를 안겨주고 있다. 지하 전시실과 지상 2층에 있는 교육실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진행되고 있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근로자들은 집으로 가는 대신 고색뉴지엄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한 가득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웃게 했을까.

계단을 올라 그들이 도착한 곳은 교육실. 캘리그라피 특강이 진행되는 곳이었다. 벌써 10여 차례 진행된 이 프로그램은 공단 근로자들에게 입소문이 날 정도로 인기 있었다.

캘리그라피는 기계적인 표현이 아닌 손으로 쓴 개성 있는 글자체를 말한다.

최근 배움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하나의 취미 활동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교육실 안에 모인 20여명의 근로자들은 서툴지만, 종이에 자신이 담고 싶은 말들을 풀어나갔다. 하얀 종이 위에서 그들의 손은 이리저리 춤을 추며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송현호(46)씨는 "회사 구내식당에 있는 포스터를 보고 연락을 했는데, 이미 정원이 차서 대기인원으로 밀려났었다가 운 좋게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며 "공장만 있던 이곳에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곳이 생겨서 좋다. 주변사람들은 캘리그라피 수업을 듣는 저를 부러워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관객 참여로 만들어진 '고색뉴지엄'

지하 1층에는 전시실과 독서 공간이 마련돼 있다. 전시실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이곳이 폐수 처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저장탱크 두 개가 있다. 두 개의 탱크는 전시를 보러 온 이들을 환영이라도 하듯 노란 띠로 몸체를 감아 단장하고, 이곳이 어딘지를 설명해주는 문구가 쓰여있었다.

그렇게 전시실을 늠름하게 지키고 있는 문지기 저장탱크를 지나 좁을 길목으로 들어서면, 운동장처럼 큰 공간이 펼쳐진다. 그 가운데 중간 중간 보이는 오래된 파이프들과 폐수처리 시설들이 눈길을 끌었다.
고색뉴지엄은 폐하수처리 시설과의 공존을 위해 정적인 전시보다는 동적인 전시를 유치하고 있었다. 관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참여형 전시'를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감성충전 스테이지'를 시작으로 'Re-born 묶는 기술', '희망 2018 화성 사진전', '누림전', '바람 그리고 풍요' 등의 전시를 유치했다. 이윤숙 작가의 '바람-온새미로'를 지난달 3일부터 29일까지 전시했다. 이 전시는 관객이 전시로 들어와 함께 어울리면서 작품을 확장해 나갔다. 전시 입구부터 측백나무 수십 그루가 관람객을 맞이했다. 나무 길을 따라 들어가면 전시장 한 가운데 철사줄에 매달린 수백개의 철사가 전시돼 있다. 이 십자가들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며, 관람객들의 무더위를 날려주고 있었다.

변지욱(25)씨는 "폐수처리 시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은데, 전시도 보고 폐수처리 시설들을 볼 수 있어서 일석이조인 것 같다"며 "특히 폐수처리시설과 전시된 작품들이 한 공간에서 잘 어우러져 영화세트장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고색뉴지엄 이렇게 변했어요!

"하수처리시설을 문화예술과 접목시켜 발상의 전환을 준 것이 인상 깊다. 이곳에 오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곳을 자주 찾는다는 문희수(24)씨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언뜻 보이는 폐수처리시설이 꼭 박물관에 온 듯 신기하다고 한다.

2005년 수원산단을 조성할 때 폐수처리장도 함께 만들어졌다.

하지만 폐수를 배출하지 않는 전기, 전자 등 첨단 업종 중심으로 산단이 구성되면서 폐수처리장은 쓸모가 없어졌다.

그렇게 10년간 방치된 이곳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렸다.
그러다 2015년, 이곳은 문화체육관광부 폐(廢)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 공모에 선정된다.

리모델링 예산 39억5000만원. 그렇게 고색뉴지엄은 마땅한 쉼터가 없는 산업단지 내 근로자들과 주민들에게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현재 고색 뉴지엄은 지하 1층, 지상 3층, 연면적 1810㎡ 규모로 전시실과 아카이브, 독서 공간, 작품보관소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색뉴지엄이 폐수처리장이었다는 점에 착안해 9월 중에는 '산업'과 관련된 전시가 기획 중에 있다.

고색뉴지엄 관계자는 "폐수처리 시설이었던 만큼 그 특색을 살려 복합문화단지를 만들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9월 중에는 더욱 풍부한 교육 프로그램과 전시로 고색동 주민들과 수원시민들을 만날 예정이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아진 기자 atoz@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