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나라 대표 변호사

 

폭염의 기록을 갈아치우는 더위가 맹위를 떨친다. 흔한 입버릇처럼 '더워 죽을 것 같은' 날씨가 계속된다. 일본과 한국이 적도보다 더 덥다는 뉴스를 보고 있다. 선풍기를 켜도 시원한 바람이 나오지 않고 열어놓은 문에서는 더운 공기가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날들의 연속이다. 만나는 사람마다 여행계획에 대한 질문을 받게 된다. 변호사니까 해외여행을 장기간 다녀오지 않을까? 8월 중순 즈음 토·일요일을 포함하여 2박3일 정도 가볍게 국내여행을 다녀올 계획을 하고 있다고 설명하면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해진다.

사무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 아래서 기록을 보고 있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사건'이다. 피해자는 고등학생, 가해자는 20대 초반 젊은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성관계를 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합의에 의한 성관계인지가 문제된다. 13세 미만자가 아닌 한 합의에 의한 성관계는 처벌되지 않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형사사건을 수임하면 가장 먼저 사실관계에 대해 인정하는지를 피고인에게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이 과정에서 피고인을 설득하기도 한다. 피고인에 대한 설득과정은 자칫 구속된 피고인과 감정적으로 대립하기 쉽고 나아가 결과에 따라서는 변호사가 피고인 가족으로부터 원망을 듣게 돼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여러 차례 확인 과정 속에서 피고인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라고 주장하였고, 수사기록도 피해자의 불완전한 진술 이외에는 특별한 증거가 없음을 발견하게 된다. 법원에 제출하는, 사건에 대한 변호사 의견을 담은 변론요지서를 여러 번 제출하면서 법관들의 심증을 흔들려고 노력하고, 법정에서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하여 정면승부를 할 준비를 하는 것도 변호사의 몫이다. 피해자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할 가능성이 많다는 점에서 변호사 입장에서는 모험에 가깝다. 피해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진행된 증인신문에 대해 피고인과 변호인 모두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심리를 종결한다. 이제 마지막 남은 선고를 기다리면서 다른 재판 준비에 여념이 없다.

아버지 유산을 둘러싸고 형제들 사이에 발생한 민사사건 기록을 보고 있다. 가급적 형제들 간 분쟁에 법원은 먼저 조정으로 정리하려고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판결까지 가는 과정에서 마음의 앙금이 남을 것으로 우려한 때문이다. 조정에 대한 의견서 작성을 위해 의뢰인을 부른다. 격앙된 의뢰인의 감정을 다독이면서 양보할 범위를 조심스럽게 제시해야 한다. 가정사 내부 분쟁은 오히려 그 감정 측면에서는 타인들 간 분쟁보다 훨씬 더 심한 감정적 골을 지니고 있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2시간이 넘어가는 시간 동안 설득과정을 거치고 나면 조정의견서를 작성한다. 조정의견서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조정위원들을 설득하기 위한 것으로 합리성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족 간 분쟁은 합의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사건 당사자들은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지만, 각자 생각하는 욕심과 가족에 대한 바람이 있고, 아직 한국 사람들의 정서에는 '벼랑 끝 전술'을 선호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탓이다. 결국 1시간을 넘어가는 조정과정은 다시 한번 조정을 진행하기로 하고 막을 내린다.
세상 모든 직업들에 애환이 있겠지만, 변호사 업무에도 나름 직업적 고충이 있다. 변호사 업무는 우선 승패가 분명하고, 둘째론 그리 길지 않은 기간 내에 재판이 종결하고, 셋째론 당사자는 절박하고, 넷째론 시간을 다툰다는 점에서 고도의 난도를 갖는다. 절박한 사건에 대해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는 의뢰인의 말 없는 요구를 묵묵히 감당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을 사무실에서 보낼 수밖에 없다. 한여름 무더위 속에서 상담, 서류작성, 재판진행을 진행하면서 파김치가 되기 일쑤다. 밤에는 잠재적 고객의 확보를 위한 술자리가 끊이지 않는다. 사무실 게시판에는 직원들의 휴가를 알리는 일정표가 붙어 있다. 결코 외국에 비해 뒤지지 않는 근로기준법의 휴가일수처럼 최소한 1주일 이상은 모두 기입되어 있다. 변호사들은 대부분 이틀이나 사흘의 여름휴가 계획이 게시판에 적혀 있다. 이 한여름 법률사무소의 시간도 흘러가고, 사건은 승패를 따라 지나간다.
돈 가진 피의자들의 시간을 때워주는 '집사변호사', 고객으로부터 판결금을 유용하는 '횡령변호사'로 살지 않고 주어진 업무 속에서 성실하게 살 수 있는 일이 있다는 데 감사를 드릴 뿐이다. 그 소득으로 가족을 부양하고 사회적 품위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오늘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