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 즐거운 예술놀이터 … 실험과 창작의 힘

 

▲ 팔복예술공장 카페 '써니'는 옛 공장인 '썬전자'의 '썬'과 과거 노동운동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이름으로 근로자와 시민들이 회의장 등으로 이용하는 탈경계의 공간이며,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산업동력의 장소를 재발견하는 곳, 탈경계와 낯설음, 날 것의 시공간 이미지 등 비일상의 공간을 '예술의 힘'으로 일상의 덤처럼 얻을 수 있는 곳. 전통과 동시대예술이 공존하는 지역. 문화재생의 힘을 주변 산업단지로까지 확장시켜 나간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치유와 회복의 예술공장, '전주팔복예술공장'을 찾았다. 예술의 힘은 어디까지인지를 가늠해 보고, 산업단지의 문화재생 사례를 살펴본다.

#산업단지의 문화재생

산업사회에서 생산기능을 담당하던 산업단지와 산업시설이 현대 사회의 패러다임 변화로 그 기능을 잃고 유휴공간으로 방치되는 현상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이러한 폐산업시설이나 유휴공간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문화재생의 사례들이 늘고 있다.

문화재생은 '문화의 재생' 혹은 '문화를 통한 재생'을 말한다. 그동안 문화는 도시재생에서 단순한 수단에 불과해 포장재로 일회성 촉발제 역할에 그쳤다. 하지만 도시의 재생에서 문화는 수단이자 방법인 동시에 그 자체로서 결과가 되고 추구해야 할 목적이어야 한다.

이런 문화적 가치와 힘에 주목해 노후 산업단지와 폐산업시설을 문화와 예술, 지역사회와 소통을 통해 변화시켜 사회적 가치와 기능을 가진 장소로 재창조하는 사업이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이다.
문화주도 도시재생 정책은 1970년대 북미대륙에서, 1980년대 유럽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전략에서 문화·예술을 적극 활용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내에서 시행되어온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사업 모델은 대부분 건물을 새로 짓는 방식의 문화토건사업 위주로 추진되다보니, 문화를 통한 도시재생 사업이 사실상 문화토건 사업으로 전락해 문화없는 도시재생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문화예술 콘텐츠보다는 특정시설이나 건물을 짓는데 치중했다는 것이다.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전주는 '리틀 한양'이었다. 산업화 시대에 섬유와 제지 중심의 산업단지가 허허 벌판에 들어서고 주변 도시의 여성 노동력을 끌어들였다. 산업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일부 공장들은 문을 닫고 노동자들도 떠났다. 공단지역 마을인 전주 팔복동에도 빈집이 남아 돌고, 한때 초등학교 전교생이 2500명이었지만, 지금은 90명으로 줄었다. 추천마을 쪽방촌도 없어졌다. 이는 이미 2, 30년 전 유럽 사회가 겪은 현상이다. 이에 유럽이 지역의 장소성을 기억하고 공동체를 회복시켜 나가는 방안으로 도입한 문화재생 사업을 우리나라도 뒤따라 진행 중이다.

전주팔복예술공장은 1980년대 이후 공장 기능을 상실하고 25년 동안 유휴공간으로 방치된 공간을 복합문화공간으로 문화재생,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인천아트플랫폼의 두배 쯤 되는 4500평 규모의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 '전주제1일반산업단지' 한 가운데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 음악산업의 한 장을 열었던 카세트 테이프를 생산하던 쏘렉스 공장이 있던 곳으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의 산업단지·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지로 선정돼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함께 사업을 진행, 지난 3월 1단계 사업을 마쳤다.

팔복예술공장은 '동시대 예술의 실험과 창작을 통해 예술공원, 예술공단을 만들고 더 나아가 시민이 즐거운 예술놀이터를 만든다'라는 비전을 갖고 있다. 예술가와 기업, 주민이 참여해 지역 공동체 회복을 위해 손을 맞잡았다.

처음엔 주민들은 세탁장을, 기업주들은 도로나 주차장을, 예술가들은 개인 작업실을, 행정기관은 개별 분양을 원했다. 하지만 이런 의견 차이를 담론의 장을 통해 극복하고, 예술공장으로 만들어 낸 곳이다.

팔복예술공장은 예술창작공간과 예술교육공간으로 구성됐으며, 예술창작공간에는 공모를 통해 선발된 국내외 13팀의 입주예술가가 입주했다. 팔복예술공장 A동 1층에는 아트샵과 카페 '써니'가 함께 문을 열어, 근로자와 시민들이 회의장 등으로 이용하는 탈경계의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또한 팔복동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주민을 바리스타와 주민 도슨트로 채용했다.

#치유와 회복의 예술공장

'기억의 재생(아카이빙)', '천명의 얼굴과 마음', '예술의 힘'. 전주 팔복예술공장이 제시한 중요한 세가지 개념이다. 이는 유휴공간을 재생하는 기존 사업과는 다른 프로세스를 도입했다. 하드웨어에 집중한 물리적 재생을 했는데, 그 공간이 다시 유휴공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 장소가 갖고 있는 기능을 다해서 쓸모가 없어졌기에, 물리적 재생만으로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유휴공간이 갖고 있는 장소적인 맥락들을 끄집어내서 기억을 공유하고, 또 그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그 장소에 생기를 불어넣는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주민과 시민, 전문가 등 분야별로 10~15명이 1주일에 한번씩 이야기는 나누는 라운드테이블(팔복살롱)을 진행했다. 그리고 찾아가는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 때 주요 주제는 4가지였다. 섬처럼 고립된 이곳을 어떻게 알리며. 전통도시 전주와 동시대 예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운영은 어떻게 하고, 콘텐츠는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등이었다. 또 어디는 철거하고 어디는 보존할 것인가. 지붕은 철거하고 벽과 트러스트는 존치하자는 등 철거 방향에 대한 논의까지 그런 고민을 토론하고 인터뷰하기를 1년동안 수없이 반복했다. 그렇게 도출해 낸 6개 키워드와 관련한 프로그램을 선정하고 그것을 구동하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오랜 담론 끝에 이끌어 낸 철학과 비전을 담아 내는 설계에 들어간 것이다.

'천명의 얼굴과 마음'이라는 다소 비생산적인 소통과 참여의 프로그램은 건축을 디자인을 하기 전에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디자인 한 것이었다. 문화생태계를 만들어주고 콘텐츠를 넣는 작업이었다. 그런 지난한 과정을 거친 '공장 속의 섬', 팔복예술공장은 지난 6월 한달동안 2만명이 입주작가 전시회를 찾을 만큼 지역사회의 핫플레이스로 등장했다.

황순우 전주팔복예술공장 총괄 감독(건축·예술, 전 인천아트플랫폼 총괄기획자)는 "앞으로 꿈꾸는 예술놀이터와 철길을 이용한 도시갤러리를 만드는 2, 3단계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팔레트와 같은 팔복예술공장을 플랫폼으로 삼아 주변의 산업단지라는 캔버스로 확대하고, 다른 지역까지 네트워크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 이동화 기자 itimes21@incheonilbo.com
 

▲ 최진용
▲ 최진용

 

[기고] 문화가 흐르는 도시재생 <2>

최진용 인천문화재단 대표

도시재생은 지역성·다양성을 강화하고 도시에 활력과 활기를 북돋고 도시의 정체성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도시재생 과정에서 문화가 보존되고 도시의 역사가 기억되고 문화의 기능이 중심역할을 해야 한다. 훌륭한 교육시설, 아름다운 상가, 좋은 의료시설, 편리한 교통보다도 마을 박물관, 소극장, 음악홀, 산책길, 작은공원, 작고 다양한 생활문화센터와 커뮤니티 공간이 도시중심 축에 자리 잡아야 한다. 개발이익으로 생겨난 플래닝 게인(Planning gain)이 우선적으로 공공시설 확충에 쓰여져야 한다.

문화는 시민 개개인에게 더 높은 이상과 자부심을 심어주고 정체성을 갖게 한다. 문화야말로 도시에 운치, 품격, 분위기를 부여한다. 도시는 감정적·심리적으로 지속 가능해야 생명력 있는 도시가 될 수 있다. 일상의 삶이 행복하고 즐거운 도시재생이어야 하며 일상의 삶의 공간을 문화공간화 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축소도시정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인천시는 그간 송도, 청라, 영종, 검단 등 신도시 건설에 도시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었다. 원도심은 상대적으로 희생양이었다. 이제는 원도심을 재생하고 활성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일 때이다.

그럼 원도심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정책을 예시적인 사례를 들어 그 방안을 제시한다.

중구·동구의 경우, 원도심의 역사와 문화를 살리는 방향에서 창조적으로 재생해야 한다. 금창동같은 곳은 책방거리와 몇 개의 작은 박물관으로 특화 시켰으면 좋겠다.

마을역사박물관, 악기 박물관, 장난감 박물관, 고양이 박물관, 인형 박물관 등 특색있는 작고 귀여운 박물관을 매년 2-3개 세워나가면, 5-10년 후에는 뮤지엄스트리트로 명성을 갖지 않을까? 뉴욕의 뮤지엄 스트리트나 프랑크푸르트의 뮤지엄 스트라세처럼 굉장한 박물관이 아니라, 아기자기한 작은 박물관을 테마로 세운다면 큰 예산없이 성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개항장 역사문화지구는 인천문화재단을 중심으로 화랑, 악기점, 소극장(연극, 무용, 음악 등)으로 특화시킨다면 서울 대학로 못지않은 역사문화예술의 거리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개항장 창조도시 프로젝트까지 추진되고 있어 개항장일대는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지구가 될 것이다. 인천 내항 1·8부두 항만 재개발이 본 궤도에 이르는 지금이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만석포구, 북성포구, 화도진 일대는 맨해튼의 배터리파크시티나 나가사키 현대미술관 잔디광장처럼 수변 조각공원, 워터프런트를 조성, 그린 산책로, 수변 무대시설 등을 조성하여 삶에 지친 시민들에게 휴식과 힐링 공간으로, 쾌적한 문화의 명소로 가꾸어가면 명품도시로 한 걸음 더 다가갈 것이다.

청라지구는 매립지는 순천만의 국가정원처럼 유럽식 정원을 조성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시민의 멋진 휴식공간과 도시의 품격을 높일 수 있고 동북아의 관광명소로 도시재정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경인운하의 아라뱃길도 전 구간을 획기적인 꽃길을 조성하는 등 문화명소로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도시기획자, 건축가, 부동산전문가뿐 아니라 문화전문가, 역사학자, 환경전문가, 심리학자, 주민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도시재생에 문화가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