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희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중국제품에 대한 제재관세를 발동한 후 미·중 상호 보복의 연쇄가 국제관계를 요동치게 한다. 미·중 마찰 전선이 확대되고 장기화하면서 패권국과 도전국 간 패권전쟁 양상까지 띠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고 항변한다.

중국은 국가의 핵심 이익과 인민의 근본 이익을 지키고, 자유무역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보복조치로 맞대응하고 있다. 명분이야 어찌 되었건 미·중 무역전쟁의 나침반은 패권전쟁을 가리키고 있다.
이 무역전쟁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얻고자 하는 게 미·중 무역불균형을 시정하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경제패권 저지, 구체적으로 '중국제조 2025' 전략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중공세의 본질이 차세대 산업 및 군사력의 기반이 되는 디지털 기술을 둘러싼 중국의 패권 확대 저지에 있는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 보면 이렇다. 미국이 촉발한 무역전쟁 배경에는 향후 10~20년 동안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겠다는 의도가 있다. 중국 첨단 기술의 발전과 중국 특색의 발전 방식을 겨냥한다. 미국이 압박하는 '중국제조 2025' 전략의 중단은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지이다. 중국의 제조업 진흥 정책을 문제시하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공평한 거래를 강요하는 일일 뿐이다.

1980년대에도 미·일 강대국에 의한 무역전쟁이 있었다. 미·일 무역마찰은 이를 두고 패권적 질서의 전환 또는 '미·일역전'을 논할 정도로 국제정치경제의 판도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은 미국의 핵우산에 자국 안보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 '눈에는 눈'으로 맞설 수 없었다. 결국 플라자합의를 통한 엔고 용인으로 총성 없는 전쟁은 막을 내렸다. 이후 일본경제는 초유의 장기불황을 경험하게 된다.

30년이 흐른 지금 미·중이 벌이고 있는 무역전쟁은 비슷하면서 다르다. 중국은 군사적·기술적으로 '중국몽'을 꿈꾸면서 패권국 미국에 맞서고 있다. 중국은 자국이 일본처럼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가 아니고 일본에 비해 훨씬 큰 내수시장도 갖고 있으며, 막대한 외환보유고도 있어 일본처럼 호락호락 당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미·중 무역전쟁이 전면전으로 치달으면 당사국은 물론 한국 경제도 큰 타격을 입는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의 제조업 생산망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중국은 한국, 대만 등에서 부품을 수입해 이를 조립·재가공하는 공정을 거친 뒤 미국 등으로 수출한다.

중국의 대미 수출이 줄면 수출용 제품을 만들기 위해 한국으로부터 부품을 수입하는 수요도 감소할 수밖에 없다. 2017년 한국의 대중 수출 중 중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79%에 달했다. 한국의 GDP 대비 미·중 무역 의존도는 무려 68.8%에 이른다. 미·중 무역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미·중, 일본과 같은 고래가 아니라 한국이나 대만, 싱가포르 등과 같은 새우일 가능성이 높다.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의 경우,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연관된 비중이 높기 때문에 무역전쟁에 더욱 취약할 수밖에 없다. WTO에 따르면 한국은 수출의 62.1%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연관되어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동맹과도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가? 무역전쟁 와중에 결코 공정한 무역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양국 간 협상의 기본은 주고받는 '이익의 균형'이다. 미국이 밀어붙인다면 양보할 카드를 찾기에 급급하기보다는 러스트 벨트 주요 제품에 대한 보복조치를 강구하는 등 '맞불을 놓는(tit-for-tat)' 방식의 보복위협도 불사해야 한다.

한국은 북한 비핵화 문제를 풀어가야 할 당사국 중 하나다. 미·중 무역전쟁이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한국으로서는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 맞불을 놓은 것이 하나의 옵션일 수는 있으나 능사는 아니다. 한국의 취약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미·중 무역전쟁은 디지털 기술패권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라는 측면이 다분히 존재한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없도록 반도체·정보기술 입국의 기치를 다시 올리고 혁신성장의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고삐를 조여야 할 때이다. 최대 교역 상대국인 미·중 간 무역전쟁은 한국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는 만큼 신흥국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생산 네트워크의 재편을 모색하는 노력도 절실하다.

'무역 레짐'과 관련해서는 유럽과 일본 등과 보조를 맞추면서 다자간 무역협정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을 다자주의적으로 압박하기에 좋은 채널인 일본 주도의 메가 자유무역협정인 CPTPP에의 참가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동아시아 지역무역협정인 RCEP의 타결에도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기능부전에 빠진 WTO의 재건에도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