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그대에게(1)

 인구는 병상에 누운 채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려 보았다. 모포를 덮어놓아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았다. 두 손으로 머리와 얼굴을 쓰다듬어 보고 목과 가슴을 더듬어 봐도 다친 데는 없었다.

 전기가 통하듯 머리 속에서 윙― 하고 울려 퍼지던 이상한 소리도 이제 멎는 것 같았다. 심하게 밀려오던 어지럼증과 매스꺼운 증상도 사라지고, 눈을 뜨고 여기저기 쳐다봐도 낮에처럼 눈알이 따갑다거나 눈동자 밑에서 뜨거운 바람이 치솟는 듯한 느낌도 없었다. 끝도 없이 밀려오던 졸음도 사라지고, 옆에서 누군가가 색색 코를 골며 자는 소리도 선명하게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그런데 세상이 왜 이렇게 뿌옇게만 보일까?

 인구는 자신도 모르게 맺혀있는 이마의 땀을 훔치며 계속 구급실 안을 살펴보았다. 그때 등화관제용 커튼이 반쯤 걷힌 창으로부터 달빛이 흘러들었다. 대대 군의소에 실려와 첫 밤을 맞는 것 같았다. 그런데 벽에 걸린 시계가 보이지 않으니까 현재 몇 시쯤 되었는지 시각을 알 수 없었다.

 뿌옇게 윤곽만 드러나는 벽시계를 바라보다 인구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우선 양곡을 실은 화물차 운전석 옆에 앉아 있어야 할 사관장이 보이지 않았고, 자신이 어떻게 해서 군의소 구급실 병상에 누워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옆에 누운 사람이 어쩌면 사관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옆 병상에 누운 사람을 한참 바라보았다.

 실내가 어두운데다 똑같은 모습이 세 개씩 보여 사물이 잘 판독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무리 지켜봐도 사관장은 아닌 것 같았다. 사관장은 머리카락이 더부룩한데 옆에 누운 사람은 까까머리였던 것이다. 게다가 사관장은 얼굴이 둥글고 이마가 넓은데 옆에 누운 사람은 대대 보위부 지도원처럼 얼굴이 강파르고 주걱턱이었던 것이다. 그는 절래절래 고개를 흔들며 달빛이 들어오는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가 어디를 다쳤기에 이렇게 구급실 병상에 누워 있을까?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기억을 더듬고 있는데 어디서 귀에 익은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디디딩 디디딩 하면서 울려 퍼지는 음악소리에 귀를 모으고 있으니까 또다시 머리 속에서 윙― 하고 전기 통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시 후 저 소리는 남반부 국방군 아새끼들의 노래 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맞다! 어젯밤에도 들었던 그 에미나이의 목소리다.

 인구는 자신도 모르게 반가운 느낌이 들어서 음악소리에 귀를 모았다.

 그때 「꿈을 잃은 그대에게」 하면서 남반부 그 에미나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또 들려왔다. 인구는 그때에서야 지금 시각이 새벽 1시15분이나 20분쯤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