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로 너무나 동화같은 내용이다. 그래서 동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한다. 한낱 천민으로서 임금의 사위가 되고 장군으로 이름을 떨치게 되는 실존인물-바보 온달의 실화이다.
 온달은 소문난 바보요 못난이여서 사람들이 피했다. 게다가 가난하여 나무를 하면서 눈먼 어머니를 봉양했다. 그때 국왕에게는 어린 공주가 있었는데 잘 울었다. 그때마다 국왕은 온달의 소문을 들었던터라 다음에 크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어느덧 공주의 나이 열여섯이 되었다. 국왕이 귀족에게 시집보내려고 했다. 소식을 들은 공주가 정색했다. 지난날 부왕이 온달에게 시집보내겠다고 했는데 약속을 저버려서는 안된다고 했다. 더구나 임금이 약속을 어기면 백성들이 어찌 따르겠느냐는 것이었다. 공주는 금붙이를 싸들고 대궐을 나섰다. 온달의 모자가 기절초풍할 노릇이었겠는데 아무튼 공주는 금은보화를 팔아 땅과 집을 사들이고 온달과 혼인했다.
 그후로 온달은 완전히 달라졌다. 수렵으로 무술을 익힌 온달은 외침이 있자 선봉장이 되어 승리를 거두고 정식으로 국왕에게서 부마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아차산성인 신라의 아단성을 공격중 전사한다. 병사들이 고향으로 운구하려 했는데 움직이지 않아 공주가 달려가 위로하자 영구가 움직여 귀향할 수 있었다. 국왕이 친히 나와 호국대장군으로 봉했다.
 온달의 설화처럼 부녀간의 갈등으로 가출 독자적인 삶을 개척하는 여인들의 이야기는 국내외적으로 널리 분포한다. 선화공주와 백제 무왕의 만남이 유사하고 어느 유복한 집안의 셋째딸이 쫓겨나 숯굽는 총각을 만나 잘 살게 되었다는 민담도 그렇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줄거리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온달은 어디까지나 우리 사서에 등장하는 실존 인물이며 국왕은 고구려 평원왕이요 공주는 평강공주이다. 그가 전사했다는 아차산성이 발굴중이며 충북 단양에 온달산성과 온달동굴도 전해진다. 고구려도시를 자처하는 구리시의 문화예술제에서 온달장군 추모제가 9일 있으리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