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좋아하는 왕이 있었다. 그래서 왕의 곁에는 늘 바둑의 고수들이 몰려들었고, 왕은 그들과 바둑을 두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 고수들 중에서도 최고수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 있었는데, 왕은 다른 사람들보다도 유독 그와 바둑을 두는 것을 즐겼다. 그런데 승리는 늘 왕의 것이었다. 이는 분명히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져주는 것이라고 알고 있던 왕은 어느 날 그를 불러 엄하게 경고했다.
 “그대가 일부러 내게 져 주었다는 것을 나도 잘 아네. 그러니 오늘은 그대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길 바라네. 만일 자네가 지면 연못에 집어넣을 것이고, 내가 지면 큰상을 내리겠노라.”
 흑백의 치열한 싸움이 바둑판 위에서 벌어졌고 마침내 바둑이 끝났다. 그러나 완벽하게 서로 비기고 말았다. 그런데 갑자기 왕이 소리쳤다.
 “이 승부는 흑을 잡고 선수를 두고도 이기지 못했으니 그대가 진 것이 분명하다. 여봐라. 이 녀석을 연못에 던져 넣어라.”
 그러자 고수는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폐하, 아니옵니다. 소신은 패하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면서 펴든 그의 손바닥에는 바둑알 한 개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는 한 집을 이겼지만 황제가 패하지 않도록 그 한 개의 바둑알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세상은 분명 강자들에 의해 이끌려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강자들이 잊고 있는 것은 자신의 존재는 수많은 약자들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도 아름다운 모습이지만 더욱 더 아름다운 것은 승리했을 때 패배자를 배려하는 것일 것이다. 바둑의 최고수는 바로 실력으로 왕을 이길 수 있었지만 패배자인 왕의 입장을 배려하여 한 개의 바둑돌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왕의 교만함은 그러한 고수의 마음을 헤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막강한 권력을 소유하다 보면 그 권력이 당연히 자신의 것인 양 착각하게 된다. 그래서 교만함에 빠져 권력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타인들의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이렇게 교만한 권력자 앞에서 감히 바른 말을 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주위에는 간신들만이 득실거리고 결국 언로가 막혀 권력자는 세상의 진위를 볼 수 있는 안목을 잃게 된다. 이때 끊임없이 모반이 발생하고 심각한 부패가 세상을 뒤덮는다.
 이처럼 교만함은 자신의 티는 보지 못하고 오히려 남의 티만 탓하여 자신뿐만 아니라 한 나라의 쇠망을 이끄는 죄악인 것이다.
 나라 밖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의 전쟁 당위론과 신중론으로 시끄럽다. 나라 안은 이용호 의혹사건으로 야당에 의한 여당 공격이 한창이고, 여당은 이에 질세라 한 야당 국회의원에 의한 노량진 수산시장 입찰 건에 대해 시비를 가리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모든 게 다 네 잘못이지 내 잘못은 없다""는 공허한 비방과 욕설만이 비싸게 지어놓은 의사당에서 값싸게 들려온다.
 IMF 위기가 왔던 그 때보다 오히려 지금이 기업하기가 더 어렵다고들 하는 중소기업가들의 하소연이 메아리도 없이 묻혀버리고, 아직도 상당수의 대우자동차 실직자들의 눈물어린 사연들이 즐비한데도, 그들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힘있는 자들의 모습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따지기 좋아하는 한 사내가 죽어 하늘에 가서 신에게 따졌다고 한다.
 “저 아래에는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즐비한데도 왜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 것입니까?”
 신이 말한다.
 “그래서 내가 너를 거기에 보내지 않았느냐?”
 이 땅의 권력자들이 교만함에 빠져 자신의 티눈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위기의 책임을 상대방이 아닌 자신들의 과오로 받아들이고 겸허한 모습으로 고뇌하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싶은 것이 어찌 나 혼자뿐이겠는가? 신(神)이 보낸 `너`가 바로 `나""인 것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진정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