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록강 건너의 중국땅 길림성 집안현은 우리 고구려 문화의 보고이다. 지금 비록 남의 땅에서 푸대접받고 있을 망정 오히려 찬란하게 꽃피고 있다. 그것은 고대문화를 판독할 수 있는 고분이라고 하는 형태로서이다.
 고구려의 건국초 유리왕 때 천도해온 집안 일대의 현존하는 고분은 1만2천기로 알려져 있다. 국도변 야산이나 옥수수밭 마을 인근과 압록강변 자갈밭에 이르기 까지 어디든 옛무덤으로 가득하다. 이처럼 고분이 광범위하게 잔존해 있는 것은 왕성했던 고구려의 국력 탓이 아닐까. 이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규모이다.
 이 고분군을 중국당국은 6개묘구로 구분 관리한다. ①우산 ②산성하 ③마선 ④하해방묘구 등이다. 이중 우산묘구에는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으로 알려진 장군총 그리고 벽화로 유명한 무용총 각저총 등이 집중되어 있으며 마선묘구에 서천왕릉이 자리하는데 이들 대부분의 무덤들은 주인공을 추정할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것은 여러 세기 침략자들의 약탈과 파괴 그리고 방치 때문이다.
 그점은 지금이라해서 나아진 것도 없다. 중국의 관리라는 게 일부를 말고는 겨우 철문을 자물쇠로 차단했을 뿐 거의가 이미 도굴된 상태이다. 광개토대왕릉 조차 주변이 심히 어지럽고 봉분은 헐었으며 판자 울타리 안까지 밭으로 경작되고 있다.
 최근 도굴된 것으로 보도된 장천1호분도 사정은 비슷하여 하해방묘구의 들판에 방치된 상태였다. 집안에서 동북으로 25㎞ 지점-집안시내를 휘돌아 북한의 만포진으로 건너가는 철로를 지나 위치한다. 강건너 북한땅에는 한 공장의 높은 굴뚝에서 흰연기가 줄곧 오를뿐 주변은 황량하다.
 그런만큼 옛 묘역을 찾는 한국 여행객들은 허탈하고 중국당국은 한국인을 꺼린다. 그들은 고구려를 자기네의 지방정권 정도로 인식할 뿐이요 만일 그들 역사의 현장이었다면 그런 상태로 방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화재는 내것 네것이 아니라 인류의 공유이다. 비록 중국땅이요 우리 문화재일 망정 폐쇄적 대응이 아닌 공동관리와 보호가 절실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