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난항 기능에 외부 쓰레기만 가득"
▲ 옹진군 덕적면 울도항 전경. 울도 주민들은 국가어항 개발 사업의 설계가 잘못돼 정주 여건이 크게 악화됐다며 피난항 기능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사진제공=이형로 울도 이장
정부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된 국가어항 개발 사업이 예산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어항 기본시설 개발에 예산만 쏟아붓고 나서는, 나 몰라라 하는 식의 정부 태도가 혈세 낭비 논란을 키우고 있다.
개발 시급성이 요구되는 곳은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사례도 있다. '살기 좋은 어촌 건설'과 '국가 균형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추진되고 있는 국가어항 개발 사업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방향 등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현행 어촌·어항법에 따르면 ▲전국에서 이용하는 어항 또는 섬 ▲어장 개발이 요구되는 외딴 섬(어항) ▲어선 대피에 필요한 어항을 국가어항으로 지정할 수 있다.

국가어항 지정권자는 해양수산부 장관이다. 시·도지사가 선정하는 지방어항에 비해 격이 높고, 국가가 개발비를 전액 지원해준다는 게 특징이다.

1967년 본격 시작된 국가어항 개발 사업엔 지난해까지 모두 4조1889억원이 투입됐다. 해마다 821억원의 정부 예산이 국가어항 개발에 쓰인 셈이다.

현재 국내 111개 어항이 국가어항으로 지정됐다. 해수부는 이 가운데 102개를 완공했다.

인천의 국가어항은 모두 5곳(어유정항·덕적도항·울도항·선진포항·소래포구항)이다. 지난해 신규 지정된 소래포구항을 제외하고 4개 어항은 사실상 개발이 완료된 상태다.

문제는 일부 어항이 지금까지 국가어항으로서 '살기 좋은 어촌 건설'이란 수혜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대표적 사례가 옹진군 덕적면에 자리한 울도항이다. 해수부는 2006년 수십억원을 들여 서해 조업 어선들의 피난항 기능을 수행하는 울도에 어항시설을 설치했다.

그러나 울도 주민들은 국가어항 개발이 되레 정주 여건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피난항 기능을 폐쇄해 달라는 입장이다.

피난항 기능 탓에 외부 뱃사람들이 와서 폐그물 등 쓰레기를 버리고 가 동네가 쓰레기 천국이 되고 있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근본적 원인은 피난항 시설이 주민들의 생활권을 침범하도록 설계를 잘못한 국가어항 개발 사업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형로 울도 이장은 "피난항 기능이 폐쇄되면 주민들이 항구 안에서 양식을 할 수 있게 돼 살길이 많아진다"며 "정부가 당초 이런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발한 게 잘못"이라고 꼬집었다.
2016년 국가어항에서 해제된 옹진군 장봉항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장봉항은 1971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으나 기본시설 완공 후 시설 투자가 이뤄지지 않은데다, 정부의 무관심 속에 항내 퇴적 현상이 가속화되면서 결국 어항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 정부 예산만 낭비한 꼴이다.
이런 문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적돼왔다.

해수부가 의뢰한 '국가어항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연구(2003)' 보고서에선 "국가어항 완공 이후 어항 기능시설 미비 등 관리가 소홀해 어항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나왔었다.

농림수산식품부의 '어항 개발 정책의 합리적 구조 재편 방안(2010)' 최종 보고서는 "어항은 대규모 투자비가 소요되고 투자 후 수정이 매우 어렵다. 더불어 투자 회수 기간이 장기간 필요하기 때문에, 어항의 특성과 주변 자원 등을 반영한 '장기 어항 개발 마스터플랜'을 수립해 어항 개발의 시행착오를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해수부 관계자는 "국가어항 개발 예산은 한정돼 있고 개발이 시급한 섬(어항)이 많다 보니, 모든 국가어항에 예산을 투입할 수 없는 실정"이라며 "이에 지속적으로 지자체들과 협의하며 국가어항을 신규 지정하거나 해제할 대상을 솎아 내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범준 기자 parkbj2@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