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 논설위원
북한 땅 '개성'을 찾았던 때는 2007년 여름이었다. 고려 초기 건립한 사찰 '영통사'에서 열리는 '성지순례 원만성취 기념 법회' 취재 차 개성 땅을 밟았다. 영통사는 우리측 천태종이 건축 재료를 지원해 복원한 남북화합의 상징이었다. 민둥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차창 밖으로 보이는 개성의 풍경은 우리나라 70년대 모습 그대로였다. 천연색사진현상소, 리발소란 간판과 '조선은 하나다'와 같은 구호도 눈에 들어왔다. 붉은 머플러를 한 아이들이 손을 흔들어주기도 했다. 오전 11시쯤 열린 법회에서 북측 장혜명 영통사 주지스님과 우리측 전운덕 천태종 전 총무원장은 각각 환영사와 답사를 통해 "영통사를 남북평화통일의 성지로 만들어 가자"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법회 뒤, 북측 안내원을 따라 선죽교와 고려박물관 답사에 나섰다. 선죽교 바닥엔 검붉은 빛깔의 흔적이 남아 있었는데 안내원은 "정몽주가 흘린 핏자국"이라고 설명했다. 옛 성균관 건물을 보수해 꾸민 고려박물관엔 공민왕 묘의 내부, 고려청자, 금속활자와 같은 보물들이 넘쳐나 있었다. 놀라운 점은 유물 상당수가 유리관 같은 밀폐된 공간 안에서 보존되지 않고 그냥 선반 위에 얹혀진 채 관람객들을 맞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개성을 다녀온 이듬해 금강산취재를 추진했으나 안타깝게도 불발되고 말았다. 그 해 7월 북한군 총격으로 한 관광객이 사망하면서 금강산관광이 전면 중단된 것이다. '그리운 금강산'의 작곡가인 최영섭 선생께 결혼식 주례를 부탁드렸을 만큼 금강산은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며칠 전 '정몽헌 전 회장 15주기 추모식' 참석차 북한을 다녀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금강산관광이 중단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제는 절망이 아닌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며 올해 안에 금강산관광이 재개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금강산이 다시 열린다면 민선7기 인천시정부의 중요 방향인 '서해평화협력 중심도시 인천'시대의 전개도 빨라질 것이다. 한반도의 단전으로 북한과 같은 바다인 황해를 품고 있고, 세계1위의 공항과 동북아 허브 항만을 품은 인천은 지리적으로나 인프라 면에서나 남북교류의 최적합 '플랫폼'이다. 인천 출신의 한상억 선생과 최영섭 선생이 작사·작곡한 '그리운 금강산'이 남북의 앙상블로 황해에 울려 퍼질 날을 기다려 본다.